길을 걸으며 삶을 묻는다…대구의 흙길

입력 2008-11-22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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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금호강변.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 대구 금호강변.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길을 걸었지/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나는 알아버렸네/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나는 혼자 걷고 있던거지/갑자기 바람이 차가와지네' (산울림의 노래 '회상' 중). 사람은 누구나 외톨이랍니다. 인생의 외길을 걷는, 그래서 외로울 수밖에 없는…. '짝'이 있는 듯싶다가도 어느새 우리 삶은 '외'로 흘러버리고 그래서 홀로 있다고 느껴질 때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왜?'냐고.

유난스레 쓸쓸하고 힘겹게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신문을 들춰봐도, 방송뉴스를 들어봐도 도무지 기운나는 소식을 찾아보기가 힘든 시절입니다. 연속극 보며 웃고, 된장찌개 놓인 저녁 밥상에 둘러앉아 잠시나마 행복을 맛보던 우리네 삶이 지나친 욕심이었을까요? 공장이 멈춰선다고 하고,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들리고, 그래서 아버지의 어깨가 작아보이는 가을입니다. 사람들 가슴에 많은 생채기를 남긴 게 미안했던지 이번 가을은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냅다 뛰어 겨울의 문턱을 넘으려 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걷다가 어느 순간 혼자임을 깨닫고, 지독한 외로움에 몸서리 치더라도 다시 길을 떠나야 하는 것을. 이유는 길 위에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보다는 땅 내음 묻어나는 흙길이 더 좋겠죠. 남은 이야기는 길 위에서 나눕시다.

◆시원스런 강변 길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소월은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고 했다. 소월이 말한 강변은 어떤 곳일까? 북적이던 여름의 화려함을 뒤로 한 겨울바다가 쓸쓸하기 그지 없다지만 철 지난 강변에 비할까. 늦가을 강변은 무채색. 시퍼런 강물은 그래서 돋보이고 더 쓸쓸하다. 강변에 서 있으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물결이 말을 걸어온다. 귀를 막고 있어도 들린다. 잔잔한 물결 속에 숱한 사연이 담겨있다. 수백리를 흘러온 물줄기는 수많은 이들의 한숨과 슬픔 그리고 허전함을 담았다.

강물과의 대화는 눈으로 나누는 것이다. 그저 바라보고 있노라면 하염없이 흘러가는 물결들이 때로는 애처롭게, 때로는 공허하게 말을 건네온다. 눈을 감아도 들린다. 강변에 부는 바람은 살갗을 간지럽히며 제 얘기를 들어달라고 보챈다. 한참을 듣다보면 어느 새 강물은 침묵 속으로 잦아든다. 강이 내 이야기를 들어줄 차례다. 굳이 말로 할 필요는 없다. 눈빛만 보고도 강물은 마음을 읽어내는 마법을 지녔다.

대구에서 경북 성주로 가는 국도를 따라 달리다보면 손칼국수로 유명한 동곡네거리가 나온다. '봉촌리' 표지판을 따라 좌회전한 뒤 외길을 달리면 '봉촌2리'가 나오고 한 때 '연 빛나는 마을'로 불려지던 곳에 다다른다. '한 때'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몇 해 전과 사뭇 달라졌기 때문. 당시 농촌체험마을로 지정돼 식당과 포플러숲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흔적만 쓸쓸히 뒹굴며 쇠락한 시절의 흉터만 남아있다.

파크호텔 뒷길을 따라 지금은 문을 닫은 고모역쪽으로 가다보면 팔현마을이 나온다. 마을 옆길을 따라가면 금호강이 내려다보이는 강둑에 오를 수 있고, 강 옆으로 올망졸망 텃밭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전망이 더 좋은 곳은 성서공단 인근의 달성습지 옆 낙동강 둑길. 2km가 넘는 흙길은 강바람을 맞으며 걸어보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다. 둑 아래 강변에 내려가면 우거진 원시림마냥 수풀로 뒤덮여있다. 지금은 그 푸르름이 다 사그러들었지만.

◆호젓한 흙길에서 외로움을 달래다

덜컹거리는 완행버스가 지나간 신작로에는 먼지가 폴폴 날린다. 11월의 산과 들판은 아버지다. 푸름이 지나간 자리에는 깊은 주름이 패어있고, 인생을 관조하는 체념 같은 깊은 침묵이 조심스레 내려 앉았다. 그래서 11월에 떠나는 산길과 들길은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감히 말하련다.

도시민들이 많이 찾는 산책로 중에는 수성구 대구스타디움(월드컵경기장)에서 시지 덕원고까지 이어지는 '만보산책로'가 있다. 10km에 이르는 제법 먼 거리지만 중간에 내려와도 좋다.

동구 봉무공원 산책로도 흙길을 따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저수지 주변을 따라 7km에 이르는 산책로는 옆에 물과 산을 끼고 있어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구미 금오산에 가면 초입 주차장에서 채미정 부근까지 일부러 흙길을 만들어 놓았다. 맨발로 걸어도 좋을 만큼 고운 흙을 깔아놓았지만 실제 맨발로 걷는 사람은 보기가 쉽지않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없는 산길이며 들길은 굳이 찾으려들면 오히려 떠오르지 않는다.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익숙해진 탓. 기왕이면 추억이 숨쉬는 고향 땅을 찾아가보는 것이 좋을 듯. 강물을 따라 걷는 길이 내면 깊숙이 움추러든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라면 들길과 산길은 자신을 둘러싼 주위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가을걷이를 끝내고 모든 것을 내준 들판은 우리에게 무엇을 위해 그리 움켜쥐고 사느냐고 묻는다. 그만큼 했으면 됐다고 어깨를 다독여준다. 어느새 늙어버리신 아버지처럼.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낙동강변길(달성군 하빈면 봉촌리)=국도로 성주로 가다가 동곡네거리에서 좌회전한 뒤 봉촌2리 표지판을 따라가면 됨. 막다른 삼거리에서 다시 좌회전한 뒤 교회 옆길을 따라가면 강변 둑길이 나옴. 가을로 접어들며 강변 억새밭이 한창임.

▶달성습지 옆길(달서구 호림동 낙동강변)=모다아울렛 앞 호림네거리에서 화원쪽으로 직진하다가 오른쪽 둑길로 올라서면 됨. 주말이면 모형 자동차 및 비행기 동호회 모임이 많음. 여유있게 걸으면 길이 끝나는 곳까지 30분 이상 걸림.

▶팔현마을 옆길(수성구 원모동 금호강변)=달구벌대로에서 시지쪽으로 가다가 고모역쪽으로 좌회전한 뒤 다시 네거리가 나오면 좌회전. 외길을 따라가다 팔현마을 옆길로 들어가면 금호강에 다다름. 강변에 사는 새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함.

▶수성구 만보산책로(수성구 고산동 대구스타디움 뒷편)=대구스타디움 옆 자동차극장쪽으로 올라가면 만보산책로 안내판이 나온다. 길이 험하지는 않지만 거리도 멀고 산행길이어서 시간이 꽤 걸림. 시지 덕원고 옆길로 올라가는 방법도 있음.

▶봉무공원길(동구 봉무동 봉무레포츠공원)=대구공항에서 팔공산쪽으로 가다가 영신고로 우회전한 뒤 길을 따라가면 주차장이 나옴. 단산지 옆 제방을 따라 산책을 시작해서 느리게 걸으면 1시간 정도 걸림. 찾는 이가 많아 호젓한 맛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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