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 도둑고양이

입력 2008-11-21 09:14:23

"지지난 봄 도둑고양이 몇 마리 내 집 담장을 슬금슬금 넘나들더니 지난봄부턴 나 몰래 새끼까지 치고는 아예 제 집인 양 의기양양하게 살고 있다. 이렇듯 내 집 정원엔 제멋대로 들어와 제멋대로 사는 것이 비단 이들뿐이 아니다. 능소화도 그렇고 보랏빛 등꽃이며 달개비꽃 등등…… 가만 생각해보니 내 무관심과 무신경이 이들을 만만하게 불러들였던 것 같다. 타고난 내 게으름 덕분에 영악한 도둑고양이도 눈치 빠른 잡초도 경계심 턱 풀고 제 삶을 부렸을 터이다. 돌아보면 시도 내게 그렇게 왔다. 그렇게 쭈뼛쭈뼛 와서는 이젠 아주 기둥서방처럼 건들거리며 살고 있다.(하략)"

아닌 게 아니라 지지난 봄 나는 시집을 내었고 그 시집 서문을 저렇게 썼다. 그 후 두 번의 봄이 오고 갔고 그 사이 놈들은 두어 번 더 새끼를 낳았고 장미는 갈수록 아름다웠고 능소화는 더 능소화답게 낭창낭창 이웃집 담장을 넘나들었다.

하루 한두 번 밥 주는 것 외에 나는 놈들에게 더 무심하려 애썼고 덕분에 놈들은 눈치코치 볼 것 없이 더 빈둥거리며 살고 있다. 아니, 고백하자면 나는 놈들에게 무심한 것이 아니라 무심한 척 애쓰면서,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무관심한 척 용쓰면서 놈들을 훔쳐보고, 도용하며, 시로 베껴 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동물 애호가들이 버려진 도둑고양이들에게 관심을 나타내었고 '도둑고양이'란 이름 대신 '길고양이'로 개명하자며 반짝 인터넷 사이트를 달구기도 했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한 나의 대답은 '글쎄올씨요'다. "사랑에 울고 돈에 속는 이 머리 쥐 나는 세상에 도둑고양이 아닌 다른 이름은 김 빠진 맥주요 절정에서 바람 빠진 그 무엇이다"라고 이미 어느 시에서 놈들을 표절했지만, 어쨌든 나의 이 '글쎄올씨요'는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런 내 주위엔 사회 정의 구현과 여성 권리 옹호를 위해 불철주야 목청 높이시는 여사님이 더러 계신다. 물론 자신의 가정도 잘 건사하시고 바깥일도 열심이시겠지만, 그런 여사님 중 한 분이 유독 이 도둑고양이들에 대해 못마땅해 하신다. 발정기 때 시끄럽고, 여기저기 쓰레기통을 뒤져 주변이 지저분하고, 늦은 밤 불쑥 마주치는 눈길이 무섭다는 것이다. 그로 인한 집값까지 들먹이실 땐 그야말로 나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찍' 소리조차 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어쩌랴? 이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달리 또 없으니.

이런 나의 고충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지 놈들은 오늘도 여전히 밥 때가 되면 우르르 몰려와 아우성이다. 저 맹랑한 놈들이 저도 밥값은 하고 산다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저를 팔아 내가 시를 쓰고 있다는 걸 눈치 챈 모양이다. 실상 시가 밥이 되는 것도 돈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이렇듯 저를 우려먹으며 시인 이름을 연명하고 있으니 이것으로 이미 밥값은 충분하다 여기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살다 보면 세상에는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중간의 어정쩡한 부류는 없는 듯하다. 그것도 고양이의 영물성이라면 영물성이겠지만 어쨌든 우리 집엔 한 패거리 도둑고양이가 산다. 개처럼 충직하지 않으나 여우처럼 교활하지도 않고 호랑이도 아니면서 호랑이보다 더 당당한 놈들이 산다. 꽃이 피어서 봄이 온 건지 봄이 와서 꽃이 핀 것인지 모르겠던 그 어느 봄부터 이름만 도둑인 도둑고양이 한 패거리와 무늬만 시인인 머리 검은 짐승이 희희낙락 한통속으로 산다. 어울뎡더울뎡 유유상종으로 산다.

박이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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