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마저 반토막내는 불황…이혼 7.3% 늘어

입력 2008-11-20 09:48:32

2년 전 남편의 사업실패로 극심한 가정 불화를 겪어온 주부 A(44·대구)씨는 요즘 협의이혼을 준비중이다. 남편의 사업실패 후 집을 전세로 옮기면서까지 몸부림쳤지만 오히려 빚이 늘어나면서 부부간에 다툼만 잦아졌기 때문. A씨는 이혼과 함께 재산분할청구도 할 계획이다. 집만 아니라 자동차, 가전제품 등도 돈으로 돌려받을 생각이다. 그는 "처음에는 중고 자동차까지 값을 매겨 나눠야 하나 서글펐지만 아이와 함께 살 걱정을 하니 모진 마음을 먹게 됐다"라고 말했다.

계속되는 불경기 여파로 '불황 이혼'이 늘어나고 있다. 예년에는 별 다툼이 없었던 자동차, 가구, 가전제품 등 소액 동산(動産)에 대한 재산분할 청구가 눈에 띄게 늘고 경제문제로 인한 협의 이혼이 증가하는 등 이혼 풍속도가 달라지고 있다.

대구지법 가정지원에 따르면 올 1월부터 10월말까지 접수된 전체 이혼사건은 8천50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천931건에 비해 7.3%(575건) 늘었다. 이중 협의이혼은 5천890건에서 6천369건으로 1년 만에 8.1%(479건) 늘었다. 차경환 판사는 "협의이혼 사유중 대부분이 '성격차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불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다. 이혼 전 1~3개월간 의무적으로 생각할 시간을 주는 '이혼숙려기간제'도 경제난 앞에서는 이혼율을 줄이지 못하고 있다.

협의이혼 가운데는 채무 부담 때문에 서류상으로만 갈라서는 '무늬만 이혼'도 상당수로 추산된다. 빚 독촉을 피하고 이혼 후 한부모 가정이 되면 여러 사회보장을 받을 수 있기 때문. 대구의 한 행정사 사무소 관계자는 "이혼 후에도 사실상 함께 살 것이라며 드러내놓고 이혼에 따른 '혜택'을 상담하는 의뢰인도 있다"고 했다.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 청구가 증가했다. 대구지법 가정지원에 따르면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사건은 지난해 1월에서 10월까지 198건이던 것이 올해 같은 기간에는 390건으로 2배 가깝게 늘어났다. 재판부 한 관계자는 "주로 환금성이 좋은 자동차에 대한 분할 청구가 많다"며 "예전에는 깨끗하게 갈라서거나 남자가 양보하는게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에는 하나라도 더 챙기려는 청구인들이 많다"고 전했다. 판결에서 전업주부에 대한 재산분할의 몫이 높아지면서 여성들이 재산분할 청구를 하는 사례도 많다.

법무부가 최근 양육비를 강제 징수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중이지만, 아예 남은 재산이 없어 양육비나 재산분할을 거론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다. 대구지법 가정지원 경우 양육비 청구는 같은 기간 63건에서 48건으로 오히려 줄었다.

차 판사는 "재산분할청구 사건 경우 소액 물건에 이르기까지 부부간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심리를 진행해야 하는 등 재판 절차가 복잡하다"면서도 "경제난에 시달리던 부부가 끝내 이혼법정에 마주서야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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