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정현주의 휴먼 토크]같이 놀래?

입력 2008-11-20 08:44:35

아기를 안고 진료실을 들어서는 엄마는 얼핏 봐도 삼천리 배달민족의 혈통이 아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작은 눈, 낮은 코를 가진 동남아 계통의 이국인이다. 강보에 싸인 귀여운 아기도 단군의 자손들과는 외양이 다르다. 아기의 작은 얼굴이 절반은 붉은 점으로 덮여있다. 붉은 점은 날 때부터 있었으며 불거진 혈관종에 때때로는 출혈이 생기고, 딱지가 앉는데 태어날 때 보다는 점차 작아지는 것 같단다. 이 말을 하는 동안 어느새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진료실 구석에는 엄마를 꼭 닮은 한 여자아이가 따라 울고 있었다.

"큰 아이가 제 얼굴을 닮아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놀림을 당하고, 아이들이 놀아주질 않아 애먹었는데 둘째는 얼굴에 점마저 있으니…. 원장님 점을 없앨 순 없는지요?" 가슴이 저려온다. 울고 있는 저 아이는 단순히 엄마 따라 우는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가슴 깊숙이 박혀있던 설움의 응어리를 토해내는 듯 했다.

"딸기혈관종은 자라면서 점차 좋아지며, 레이저 시술을 받으면 임상 결과도 좋아요. 제가 꼭 완치해 드릴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돌팔이 의사처럼 확신에 찬 목소리로 과도하게 흥분하며 완치를 약속했다. 사실 약간의 흔적이 남을 수 있을 만큼 혈관종이 크고 심했지만 울고 있는 모녀에게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금방 그녀의 얼굴은 밝아졌다.

오래 전 TV에서 '토크 쇼'를 본 기억이 난다. '토크 쇼'가 그러하 듯 매사에 메시지가 있다. 이 날은 모양이 다르다는 한계를 극복하고 하나가 돼 '같이 놀수 있음'이 한 사람에게 얼마나 큰 선물이고, 인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메시지였다. 어느 시각 장애인이 자라 성공한 기업인이 되고 난 뒤 어린 시절, 절망과 자괴감에 빠졌을 때 자기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한 마디 말을 회상했다. 항상 혼자 놀고 있는 그에게 이웃 친구가 "같이 놀래?"라고 던진 한 마디. 그를 세상에 처음 나올 수 있도록 한 말이다.

요즘에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다문화 가정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단일민족, 단일문화로 오래 이어온 한반도의 정서는 이런 다문화 가정을 수용하기에 매우 인색하다. 다문화 가정, 장애인 등을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평가 절하하거나 차별하고 심지어는 학대하는 수가 있다. 너와 내가 같고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고뇌와 슬픔, 상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같이 놀래?" 라고 말하며 손을 뻗칠 수 없는 사람은 진정한 '사람'이 될 수 없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슬플 때 또는 상처를 받았을 때, 지나치지 않고 공감하며 아픔을 같이 느껴주는 손 내밈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같이 놀래?" 하며 손을 내미는 어린 아이의 마음에서 시작 되는지도 모른다.

내 앞에서 울고 있는 모녀를 향한 나의 작은 친절이 서로에게 "같이 놀래?"라는 화합의 손을 내미는 아름다운 몸짓을 하는 온화한 사회를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053)253-0707, www.gounmi.net

(고운미피부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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