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의병장 문석봉 사망

입력 2008-11-19 06:00:00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자 대구시 달성군 현풍면 출신인 문석봉은 9월 18일 충청남도 유성에서 300여명을 이끌고 항일의병을 일으켰다. 유성관아의 무기를 탈취하고 삽시간에 1천여명으로 세를 불린 의병들은 진잠을 거쳐 공주로 진격했다. 하지만 파죽지세로 진격했던 의병들은 일본군·관군의 연합군과 맞붙은 공주전투에서 패했다. 문 의병장에게는 현상금 일만금이 걸렸다.

의병 200여명을 이끌고 현풍으로 낙향한 문 의병장은 재봉기를 준비하였으나 지원을 약속한 고령현감의 밀고로 체포되어 대구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남평 문씨 일가들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탈출했다. 1896년 4월 강원도 원주에서 1천여명의 의병을 다시 규합해 일본군과 맞서 빛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으나 감옥에서 받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병을 얻어 그해 11월 19일 고향에서 생을 마감했다.

1851년 현풍에서 태어난 문석봉은 문무과에 모두 급제, 진잠현감을 지냈다.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최초로 의거한 그의 봉기는 의병활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데 기폭제가 됐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199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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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관리부 성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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