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농업혁명 정밀농업을 준비하자] ②농업을 살리는 과학

입력 2008-11-18 06:00:00

▲ 정밀농업에는 다양한 첨단과학기술이 동원된다. 변량 비료살포기풍량계, 수확량 모니터, 컴바인에 장착된 컴퓨터(사진 위로부터).
▲ 정밀농업에는 다양한 첨단과학기술이 동원된다. 변량 비료살포기풍량계, 수확량 모니터, 컴바인에 장착된 컴퓨터(사진 위로부터).

21세기는 지식·기술·정보 중심의 사회로 경제·사회·과학 등 각 분야에서 IT기술을 접목, 발전과 변화를 주도해 가고 있다. 세계 각국과의 잇따른 자유무역협정(FTA),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국민적 관심 고조 등 안팎으로 본질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우리 농업도 예외일 수 없다. 비료와 농약을 듬뿍 주어 다수확을 올리는 전통적인 영농방식으로는 개방화시대의 무한 품질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농업기계 등에 활용, 농업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정밀농업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새로운 농업혁명은 정보화

농경문화의 변화에서 1차 혁명은 철의 이용으로 농기구를 만들어 사용한 것이고 2차 혁명은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농업용 트랙터를 개발한 것이다. 그러면 3차 혁명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많은 농업 전문가들은 '정보화'라고 단언한다. 선진국들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농경지 위치별로 토양의 정보, 작물의 생육상태, 수확량 등 포장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농장을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정밀농업을 실용화하고 있기도 하다.

정밀농업은 농업시스템 전반이 통계적 접근에서 변량적 접근(장소·위치에 맞는 영농처방)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밀농업의 적용범위는 농업시스템 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밀농업을 완전하게 구현하기 위해서는 세가지 분야의 기술이 전제돼야 한다. 먼저 작물 생육상태, 토양 비옥도, 기후 등 농작물이 성장하는 주변환경의 정보를 위치별로 파악해야 한다. 토양센서를 응용해 논이나 밭의 산도, 전기전도도, 유기물 함량 등을 측정하거나 생육센서를 이용해 엽록소, 분얼수(줄기 수의 증가), 초장(잎의 길이)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두번째는 전산화된 지리정보시스템(GIS) 지도와 데이터베이스로 위치별 작물 생육환경 정보를 처리하고, 변량형 농작업기계 제어시스템을 구동하기 위한 처방을 결정하는 기술이다. 기존 작물종합양분관리(INM)농법에서는 작물을 수확한 뒤 포장 토양을 분석해 이듬해 비료량을 결정했으나 정밀농업에서는 작물별 양분의 흡수량, 수확 후 토양상태뿐 아니라 현재의 작물상태까지 진단해 종합적으로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마지막은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농자재를 원하는 양만큼 투입하는 작업이다. 변량처방지도를 기반으로 GPS가 결합된 변량작업기를 통해 화학비료와 농약의 살포량, 씨앗 파종량 등을 적재적소에 필요한 양만큼 살포하게 돼 환경부담을 줄이게 된다.

◆기대되는 효과

지난 20세기의 농업기술은 생산성 향상을 목적으로 기계를 도입하고 대형화해 화학비료와 농약을 대량소비하는 형태였다. 즉 투입에너지 증대를 기반으로 발전해온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방식으로 작업효율이나 생산성은 향상됐지만 농지나 주변에 주는 부하가 크고 환경을 희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밀농업 기술이 확립되면 농장관리의 저비용화, 자재투입의 효율화가 가능해져 생산성이 향상된다. 물론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게 됨에 따라 식품의 안전성과 환경 보전에도 도움이 된다.

정인규(41) 국립농업과학원 농업공학부 연구사는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520㏊의 옥수수·콩 농장에서 3년간 정밀농업 효과를 조사한 결과 투자비용은 ㏊당 47.9달러였지만 수익은 97.8달러로 나타났다"며 "농장 규모가 다른 만큼 차이는 있지만 정밀농업은 국내에서도 유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밀농업은 더욱이 농산물의 모든 생산과정이 전산화됨으로써 농작물 재배이력을 제공, 소비자들의 호의적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일본에서 몇년 전부터 쌀 농사의 정밀농업화를 서두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소비자 요구가 다양해지면서 그동안 경쟁이 적었던 쌀의 산지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고품질, 저농약 등 고부가가치화가 생존의 조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밀농업을 시범실시하고 있는 경기도 평택시 농업기술센터 염학수 식량환경과장은 "경기도 내 다른 지역보다 낮은 수준이었던 평택지역의 쌀값이 정밀농업 도입 후 비슷한 수준까지 올랐다"며 "소비자들이 차이를 직접 느낄 수 있게 정밀농업 체험관광도 조만간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밀농업은 또한 인구 감소에 따라 일손 부족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농촌 현실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기계화가 되면 노동집약적 생산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고 생산자는 좀 더 효율적인 작업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 어디까지 발전할까

첨단과학기술의 농업 현장 적용은 점점 가속도를 내고 있다. 수확량지도 작성에 필요한 곡물 수확량 모니터는 미국 오하이오·인디애나·미시간·일리노이·아이오와·미주리주(州) 등 이른바 콘벨트(Corn Belt)에서는 이제 기본장치로 쓰일 정도. 현지 농업 관계자들에 따르면 1996년 전체 재배면적의 15% 정도에 쓰였던 이 장치는 지난 2002년 30%까지 확산됐고 2009년에는 50%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유수의 농업기계 전문회사인 존 디어(John Deer)사의 앨런 어터백(Alan Utterback) 미주리주 세일즈담당은 "100마력 이상 트랙터의 경우 80% 이상이 수확량 모니터와 GPS가 기본사양으로 장착된 채 출고된다"며 "자체생산하는 GPS 수확량 모니터 매출이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라트네시 쿠마(Kumar) 박사팀은 무선으로 동작하는 토양 센서(soil sensor)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이 제품은 농경지에 함유된 수분의 양을 측정, 무선으로 그 결과를 전송한다. 앞으로는 토양의 온도, 영양도 등에 관한 자료도 처리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이번에 개발된 시제품은 폭 5㎝, 길이 10㎝, 두께 2.5㎝ 정도로 작으며 전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지상에 안테나를 구축할 필요도 없다. 센서는 240∼480㎝씩 떨어진 곳마다 하나씩 땅 밑 약 30㎝에 묻을 수 있도록 고안됐다. 무선 토양센서를 통해 학자나 농부들은 물이 농경지를 따라 어떻게 이동하는지 알 수 있고 농작물 성장과 생산량을 예측하는 데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무선 토양 센서 개발 프로젝트는 3년에 걸쳐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지원으로 수행 중이며 연구 완료 시점은 2009년 4월이다.

이 밖에 초정밀 실시간(Real-Time Kinematik·RTK) GPS도 농작업 현장에서 이미 쓰이고 있고 인공위성·무인 헬리콥터를 이용한 원격탐사(리모트 센싱), 무인 자동주행 트랙터도 보급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케네스 서더스(Kenneth Sudduth) 미 농무부 소속 농업엔지니어링 박사는 "컴퓨터교육을 받은 진보적 농민이 늘어날수록 정밀농업 기술은 더욱 발전하게 될 것"이라며 "과일 등 고부가가치 농산물 생산에 필요한 기술개발에도 정부지원이 확대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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