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러 분야에서 패자 부활전이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대학입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무수한 경쟁 중에 가장 처절하고 잔인한 단판승부이다. 수능시험은 운전면허 필기시험처럼 일정점수 이상을 받으면 모두에게 동일한 자격을 주는 자격시험이 아니다. 수험생을 성적에 따라 한 줄로 세워 놓고 대학 서열에 따라 끊어서 데려가는 식의 현행 대입전형 제도는 소수에게는 더없는 기쁨과 성취감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러나 후미에 위치한 학생들은 필연적으로 심한 패배감과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몇몇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알 수 있다. "지난해 수리가 너무 쉬워 한 문제 실수로 원하는 대학에 떨어져 재수를 했는데, 올해는 너무 어려워 또다시 수학 때문에 가고 싶은 대학에 못 갈 것 같아요"라며 어느 의대 지망생은 눈물을 흘렸다. "장 폴 사르트르가 '지옥이란 타인의 시선'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아이의 수능 성적은 직장 생활에서도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조기유학을 보냈더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합니다. 당분간은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피하고 싶습니다." 지역 어느 대학 교수의 말이다. "같이 어머니회 활동을 하며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하며 서로 의지했지만, 우리 아이가 시험을 망쳐서 이제 더 이상 전화를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습니다"라며 한 어머니는 울먹였다. 이처럼 가슴 아픈 이야기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수능시험이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한 번 명문대를 졸업했다고 과거처럼 기득권이 평생 보장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끊임없이 자기 개발에 힘쓰며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지적 유연성과 탄력성을 가지지 않으면 출신성분에 관계없이 살아남기가 어려울 것이다. 명문 대학을 나와도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더 이상 기득권 같은 것은 없다. 외양과 간판이 아무런 검증 없이 위력을 발휘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어디에 있든지 실력과 콘텐츠가 중요하다.
기존의 선망받는 직업과 대학에 모든 인재들이 벌떼처럼 달려드는 사회는 창조적 에너지와 유연성이 상실된 사회이다. 지금 화려해 보이고 안정되어 보이는 자리를 위해 치열한 소모적 경쟁을 벌이기보다는 스스로 새로운 자리를 창조하는, 다시 말해 현재 자신이 처해 있는 곳의 햇볕을 지키고 즐기며 자아실현을 위해 자신과 치열한 투쟁을 벌이는 디오게네스적인 인간형이 존경받고 성공하는 시대가 급속히 다가오고 있다. 단판승부에서 실패했다면 긴 호흡으로 멀리 보며 차분하게 다음 승부를 준비해야 한다.
수능시험은 끝났다. 이제 차분히 앉아서 내일을 생각하자. 무엇을 전공할 것인가를 먼저 결정하고, 그 다음에 합격 가능한 대학을 고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즐겁게 몰두할 수만 있다면 대학의 지명도와 학과에 상관없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윤일현(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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