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수능시험을 치른 후

입력 2008-11-18 06:00:00

수험생, 학부모 여러분 그동안 수능시험 공부하느라, 자녀 뒷바라지하시느라 무척 고생 많았습니다. 수험생들은 이상 과열된 입시경쟁을 치러야 하는 이 땅에 태어난 '죄'로 열정과 감성을 마음껏 뿜어내보지 못한 채 대입이란 '역사적 사명'에 눌려 꽃다운 청춘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부모님들은 또 어땠습니까? 새벽녘 정화수(정한수) 떠 놓고 기도하던 시절은 팔자 좋았던 옛날이었죠. 자녀의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것은 기본이며 아들, 딸 대신 두꺼운 참고서 한 권 분량의 난해한 입시정보를 분석하시느라 그 얼마나 힘들고 괴로우셨습니까?

수능시험은 끝났습니다. 누구는 시험을 잘 봤다고 기뻐하고, 어떤 수험생들은 실망하고 풀이 죽어 있습니다. 게다가 올해는 수리영역이 무척 어렵게 나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하지만 가채점 결과, 대구 수험생의 평균 수리영역 점수가 지난해보다 크게 떨어졌다(수리 가형 17.1점·나형 10.6점)고 하니 너무 근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평소 모의고사 성적보다 높거나 낮다고 해서 一喜一悲(일희일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수능시험에서는 내가 몇 점을 받았느냐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전국의 수험생 가운데 내 위치가 어디쯤이냐가 중요하지요. 수능성적표를 받는 12월 10일까지는 자신의 점수가 전체 점수 분포에서 어디쯤인지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행여 이를 안다고 해도 지원 대학 및 학과, 논술, 면접 등 다른 변수가 무척 많습니다.

수능시험처럼 큰 시험을 치른 사람들은 몇 가지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시험을 무사히 치렀다는 안도감, 좀 더 공부하지 못한 점을 안타까워하는 후회, 그리고 초·중·고 12년 동안 학교 공부가 단 하루의 평가로 끝난 것 같은 허무감입니다. 이외에도 내게 어려웠으면 다른 사람도 어려웠을 것이란 자기합리화, 시험에 대해선 생각하기도 싫어하는 회피반응 등이 있습니다. 이처럼 수험생들은 시험이 끝난 뒤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스트레스를 엄청 받습니다. 지금 수험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안정과 따뜻한 격려입니다. 자녀가 의기소침해 있거나 불안해하면 용기를 주십시오. 자녀의 친구나 '엄친아'(엄친아는 '엄마 친구의 아들'이란 뜻의 유행어이다. 어머니가 자녀에게 '내 친구 아들 누구는 공부도 잘하고…'하며 비교를 곧잘 한다는 데에서 나온 말)와 절대 비교하지 마십시오. 특히 친지의 자녀 중 수험생이 있다고 해서 생각 없이 '시험 잘 봤냐'며 안부전화를 하는 일은 삼가주십시오. 수험생이나 그 부모들에겐 자칫 '안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염장 지르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요즘 같은 제도에서는 진정한 대학입시는 수능 이후부터 시작됩니다. 같은 점수를 받고도 어떤 전략을 세우고 어떤 곳에 지원하느냐에 따라 成敗(성패)가 갈립니다. 논술이나 면접 등 대학별 시험도 차분히 준비해야겠습니다.

한가지 더. 수능시험, 대입의 결과가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삶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많은 관문을 모두 쉽게 통과하면 좋겠지만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남들 다 가는 대학 대신 자신만의 삶을 찾겠다며 수능시험을 보지 않는 학생들도 있다고 합니다. 수험생 여러분, 가장 중요한 것은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겐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젊음이 있지 않습니까?

김교영 사회1부 차장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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