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청년 고용시장 현주소는?

입력 2008-11-17 09:33:29

"월급 120만원 받을 바엔 알바…취업 '눈높이'도 문제"

"아직까지는 시작일 뿐이에요. 내년 봄이 되면 IMF 수준에 버금가는 실업대란이 빚어질 수 있다는데…."

불황으로 고용 시장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가뜩이나 높았던 청년 실업률과 무직자율(일자리 찾기를 아예 포기한 비경제활동인구)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기업들이 애초 예정했던 채용 규모를 절반 이하로 줄이고 있는데다 내년 상반기에는 아예 꽁꽁 얼어붙을 것이라는 적신호가 잇따르고 있다. 사회 진출을 앞둔 20대들은 "직장을 잡기 위해 몇 년을 투자했는데 일자리는 더 줄어들고 있다. 우리는 '88만원 세대(20대 대졸자들이 비정규직에 취업하면서 받는 평균임금)'라고 불리는데 체감 분위기는 더 형편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바늘구멍 취업문, 되는 게 없다

3개의 과외를 뛰면서 월 110만원을 버는 대학 졸업 3년차 최모(28·여)씨. 사범대를 졸업한 최씨가 처음부터 '전문과외교사'가 되길 원했던 것은 아니다. 임용고시에 연거푸 떨어진 그녀는 "아직도 매일같이 취업사이트를 들여다본다. 요즘은 일주일에 2번꼴로 원서를 내고 있지만 취직이 쉽지가 않다"며 "이제는 정말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과외를 직업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1년 동안 대기업에 근무하다 그만두고 2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이모(31)씨는 몇 달 전부터 다시 구직활동에 나섰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있다. 이씨는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별 비전도 없는 삶이 싫어 그만두고 뛰쳐나왔는데 이제 와서는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며 "취업시장이 이렇게까지 얼어붙을지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라며 애꿎은 담배만 피워댔다.

대학에서는 IMF 직후와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졸업을 늦추기 위해 학점을 취소하거나 고의로 졸업시험을 망치는 졸업유예자, 취업 준비용으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윤모(27)씨는 예정에 없던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고 지난달 시험을 봤다. 윤씨는 "스펙(학점, 토익점수 등 취업에 필요한 각종 점수들을 일컫는 말)이 나보다 월등한 친구들도 번번이 시험에서 떨어진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시간을 벌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고용지표는 악화일로를 달리고 있다. 대구경북지방통계청이 12일 밝힌 '10월 대구경북지역 고용동향'에 따르면 대구의 실업자 수는 지난해에 비해 1만명(28.1%)이 증가했고, 구직포기자 등이 포함돼 있는 비경제활동인구는 83만9천명으로 1년 전에 비해 9천명(1.0%)이 늘었다.

공무원이 되기는 더욱 힘들 전망이다. 전국 16개 광역 시·도 인사담당자들은 지자체들의 내년 채용인원이 올해보다 대폭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새 정부 들어 인력감축을 통한 조직개편이 추진되면서 공무원 시험 합격자중에서 임용대기자가 많아지고, 경기불황으로 조기퇴직을 원하는 공무원은 줄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연차적으로 6급 이하 공무원의 정년이 57세에서 60세로 연장되는 것도 신규채용을 막는 요인이다.

◆고학력 백수, 눈높이도 문제

2002년 전문대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허모(27)씨. "몸 쓰는 일보다는 머리 쓰는 일을 찾고 싶다"는 그는 아직까지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PC방이나 편의점, 대리운전 등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다. 컴퓨터를 전공하고 중소기업 몇 곳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한두달도 버티지 못했다. 사무직과 현장 일을 겸해야 하는데 무거운 컴퓨터를 나르고 각종 선로작업을 해야하는 일이 싫었기 때문.

높은 청년 실업·무직률에 대해 취업전문가들은 '눈높이가 문제'라고 냉정하게 지적하고 있다. 자발적 '백수'로 사는 15~34세 인구가 전국적으로 100만명에 육박하는 현상은 직업에 대한 젊은층의 태도에 큰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대구종합고용지원센터 윤영탁 팀장은 "젊은 구직자들이 원하는 3가지 조건이 '사무직' '집 가까운 직장' '가족같은 분위기'"라면서 "월 120만원짜리 직장에 다닐 바에는 아르바이트로 용돈이나 벌어 쓰겠다는 젊은이들이 주위에 너무나 많다"고 했다. 종합고용지원센터가 운영하는 대구워크넷에는 하루 평균 70~80여명의 20·30대 젊은 구직자가 등록하지만 이들 중 직장을 찾는 경우는 4명중 1명꼴이다. 직장에 들어가더라도 몇 달 버티지 못하는 이들이 상당수다.

윤 팀장은 "요즘은 기업체 10곳 중 7, 8곳은 경력직을 선호하고 있는 추세"라며 "당장 첫술에 배부르려고 하기보다는 임금이 낮고 기업 규모가 작더라도 경력을 쌓는다는 차원에서 일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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