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적 움직임보다 정책이 선도, 시행착오 잇따라
예술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사적 활동에 머물러 있던 예술을 공적 영역으로 끌어 들이려는 움직임이 열풍처럼 일고 있다. 대구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대구시는 중구 수창동 구 KT&G 연초제조창을 예술창작 공간으로 조성하려는 프로젝트(가칭 '대구문화창작발전소')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공공예술의 역사가 짧다 보니 추진과정에서 여러가지 문제점도 노출되고 있다. 공공예술에 대한 논의와 점검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국내 공공예술의 현황과 함께 미국 시카고의 선진 사례를 총 4회에 걸쳐 소개한다.
◆왜 공공예술인가
자본주의의 발달로 사회가 양극화되면서 사회 갈등을 봉합하고 치유하는 문화의 역할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비인간적인 도시 환경에 생명력을 불어 넣고 지속가능한 도시 형성을 위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공공예술이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사유화하고 시장 논리를 강요한다. 특히 신자유주의 정책은 문화 영역에 공공성을 포기하고 손익계산서를 맞추라고 요구한다. 문화 공공성이 빠르게 해체되면서 문화 소외계층이 늘어날수록 공공예술의 중요성은 증가한다.
이원재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자본주의의 배타적, 사유화, 독점화 과정은 사회 공공성의 해체를 강요해 왔고 이 과정에서 문화 공공성 역시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경제적, 정치적 공공 영역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달리 문화 관련 공공영역은 더욱 더 빠르게 사적인 영역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더욱이 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소비문화와 문화산업의 팽창은 문화의 사유화와 독점화를 묵인하고 있다"며 문화 공공성 회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공공예술이란 무엇인가
공공성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개념 규정이 달라진다. 공공예술에 대한 총론적인 개념은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으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전문가들마다 의견이 다른 까닭이다. 공공예술은 예술가 개인 작업에서 벗어나 삶의 환경 자체를 변화시켜 나가는 사회적 작업이며 지역사회 활성화와 지속가능한 개발, 지역 주민의 문화적 감수성 및 삶의 질 향상 등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것에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한다.
하지만 어디까지 공공예술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공적 자금 투입 여부를 공공예술의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공적 역할을 수행하면 모두 공공예술로 볼 것인가 등 공공예술을 나누는 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특히 국내에서는 공공예술이 공공미술과 같은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 공공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진 행사 대부분이 공공미술이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표적인 공공미술프로젝트로는 문화관광부가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문화나눔 ▲쾌적하고 문화적인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의 실현 ▲주민참여형 공공미술의 새로운 모델창출 목적 아래 시행하고 있는 '아트 인 시티'다. 대구 달서구 SCN 성서공동체 FM 건물과 옥상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대구성서공단프로젝트'를 비롯, 대전홈리스프로젝트, 부산수정동프로젝트 등이 '아트 인 시티' 사업으로 추진됐다.
임정희 연세대 겸임교수는 "공공예술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작가들의 예술 작품만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들의 작품도 대상이 될 수 있다. 공공예술은 개념적 정리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기획이며 맥락사이에서 이해해야 할 대상이다. 사회적 관계망을 만들어 내느냐하는 것이 공공예술을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평가 기준에 대한 다양한 척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공공예술에 대한 개념 정립이 필요함을 시사했다.
◆경험·기획의 한계를 넘어라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많은 공공예술이 행정가, 기획자, 예술가, 지역 주민 등 구성원들의 경험적, 기획적 한계로 인해 시행착오를 빚고 있다. 대구에서 진행된 공공예술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봉산문화회관은 '예술이 도심을 재생하다'라는 주제 아래 다양한 기획 전시를 열고 있으며, 대구현대미술가협회는 지난 7월 '도시디자인프로젝트-미술, 대구를 움직이다'는 전시를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했다.
하지만 '예술이 도심을 재생하다'는 전시장 안에서 모든 예술 행위가 이루어짐에 따라 현장성을 담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또 '도시디자인프로젝트-미술, 대구를 움직이다'는 실생활에 접목시킬 수 있는 미술 작품을 발굴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였지만 220여명의 참가 작가들이 내놓은 상당수 작품들이 기대에 못미쳤다. 대구현대미술가협회가 공공예술에 대한 작가들의 해석이 제각각이어서 기획 의도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자평할 정도였다.
이에 대해 이원재 사무처장은 "한국의 공공예술은 정책이 선도하는 구조다. 자생적인 움직임이 먼저 일어나고 정책이 이를 뒷받침해주는 구조가 아니다. 한국의 공공예술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작가들의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또 임정희 교수는 "공공예술에서 예술가의 역할은 사회적 소통이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에는 예술가들을 올바른 매개자로 교육시킬 수 있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기금 지원을 받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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