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전란의 시대(전쟁과 역사3 고려후기편)

입력 2008-11-12 06:00:00

임용한 지음/혜안 펴냄

1219년 봄, 20만의 군대가 현재의 카자흐스탄 알타이산맥 사면의 이르티슈 강 상류에 집결했다. 150㎝가 조금 넘는 키에 눈이 작은 56세 노인이 출정을 선포하자 대군은 일제히 말머리를 서쪽으로 돌렸다. 인류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고, 가장 빠르고, 가장 광폭했던 전사(戰史)의 시작이었다.

1227년 칭기즈칸이 사망하기까지 8년 동안 몽골군은 중앙아시아와 중동, 러시아를 점령하고, 서쪽으로 폴란드, 남쪽으로 인도 국경까지 진출했다. 칭기즈칸의 몽골군은 당시까지 지구상에 존재한 군대 중 가장 강한 군대였다. 그들은 중앙아시아의 기병과 낙타부대, 인도의 코끼리부대, 유럽의 중장기사단 등 세계 전쟁사에 등장하는 모든 유형의 군대를 격파했다. 혹한지와 혹서지, 사막과 고원, 습지와 늪지 등 모든 기후와 지형을 정복하는 전무후무한 기록도 세웠다.

몽골의 기병부대는 현대의 기계화 부대도 이루지 못한 기록을 세웠다. 러시아에서 몽골의 군마는 히틀러의 탱크보다 빨리 진군했고, 나폴레옹과 히틀러도 실패한 러시아를 간단히 점령했다. 몽골군은 2001년 미군이 성공하기까지 아프가니스탄을 정복한 유일한 군대였다. 1979년 러시아는 최첨단 탱크와 헬기, 화학탄을 사용하고도 아프가니스탄 점령에 실패했다. 칭기즈칸 사망 후 몽골군은 인도를 지나 정글과 더위를 뚫고 미얀마까지 진군했다. 600년이 지난 후 이 지역에 도전했던 일본 군대는 최악의 패배를 당했다.

몽골군의 이 놀라운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몽골군은 1명의 기병이 3, 4필의 말을 거느렸고, 창과 칼, 철퇴, 활로 무장했다. 활은 마상에서 사용하는 작은 활과 말에서 내려서 쓰는 조금 큰 활, 두 종류였다. 경기병과 중기병으로 구성되고 정찰대를 사용했다. 그러나 이런 무장과 전술은 거란군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몽골군은 훨씬 강했다. 그들의 삶 자체가 군사훈련과 같았다. 폭염과 폭설이 반복되는 기후, 물과 풀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생존환경, 걷기도 전에 말타기와 활쏘기를 배우는 유목환경은 그들을 최고의 기병으로 키웠다.

병법은 말한다.

'적의 병력이 많으면 분산시켜 서로 구원하지 못하게 하라. 수십만명의 병력이 천명씩 공격해 온다면 만명의 병력으로도 막을 수 있다.'

몽골군은 병법의 이 절대명제를 무시한다. 그들은 가뜩이나 적은 병력(몽골군의 최대 약점은 적은 인구에서 비롯된 병력부족이었다)을 여러 부대로 쪼개 사방으로 분산시켰다. 그리고 지도상의 순서를 무시하고 이곳저곳을 마구 공격했다. 병력분산으로 전력이 약화되고 각개격파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에도 몽골군은 승리했다. 발군의 기동력 덕분이었다.

몽골군은 일단 부대를 나누어 주변을 휩쓴다. 지도상 우선순위를 무시하고 동시다발적으로 사방을 공격한다. 도로는 끊기고 성들은 고립된다. 전략요충지인 대읍에 병력이 모이지 않고, 전선은 형성되지 않는다. 몽골군은 이런 방법으로 성들을 고립시키고, 대읍으로 집결할 병력을 제거한 뒤 적들보다 빠르게 집결해 전략요충지를 공격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기동전이었다. 그러니 몽골군은 '적을 분산하라'는 병법의 기본을 응용했을 뿐 위반하지 않았다.

몽골군은 공성전에도 세계 최강이었다. 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험악한 요새를 가진 중앙아시아의 국가들을 점령했다. 공격군과 수비군 사이 높이가 100m도 넘는 성을 첨단의 공성기구와 기술로 무너뜨렸다.

흔히 우리는 고려가 몽골군을 맞아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으로 안다. 고려가 대비를 제대로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패배했지만 세계 최강 몽골군을 맞아 세계의 어느 나라보다 잘 싸웠다. 특히 구주성 전투는 전사에 빛날 전투였다.

몽골군은 성을 공략하기 위해 최첨단 공성기구를 동원했다. 누거는 나무로 만든 장갑차에 소가죽을 둘렀다. 이 장비를 이용해 성벽을 부수고, 성 밑으로 땅굴을 팠다. 그러나 몽골군은 고려의 성을 몰랐다. 성은 땅위로 드러난 부분 외에 땅 밑에도 성벽이 들어가 있다. 고려군은 몽골군이 한참 파고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돌을 무너뜨려 적들을 생매장시켰다.

세 번째 공격에서 몽골군은 대형 투석기를 사용했다. 성벽이 뚫리고 몽골군은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그러나 고려군은 물러서지 않았다. 13세기 지구상에서 가장 사나운 군대를 향해 구주성의 병사들은 육탄으로 부딪쳤다. 정예무사들인 별초들은 사나운 몽골군을 성밖으로 몰아내고 무너진 성벽을 목책으로 막았다.

몽골은 목책을 파괴하기 위해 기름 불화살을 날렸다. 고려군은 물을 섞은 진흙을 부어 기름불을 제압했다. 몽골군은 불붙인 수레를 성문에 밀어 성문을 태우려 했다. 고려군은 문루에 물을 저장했다가 일시에 부어 불을 껐다. 두 번째로 성벽이 무너졌을 때 고려군은 목책 대신 쇠줄을 엮어 몽골의 화공을 차단했다.

성벽은 무너지고 쇠사슬 사이로 성 내부가 드러났다. 오랜 전투로 고려군은 지치고 희망을 잃은 얼굴이었다. 이제 몽골군의 성 점령만 남았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 몽골군을 두려움에 떨게 한 군대가 지상에 탄생한다. 고려군이 성문을 열고 뛰쳐나온 것이다. 전쟁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극적인 장면이 구주성에서 실제로 벌어졌다. 큰 피해를 입은 몽골군은 멀찌감치 물러나 진지를 구축했다.

몽골군은 '저항하는 성은 살육한다'는 원칙을 깨고 사신을 보내 항복을 권유한다. 그러나 구주성은 항복을 거부했다. 교섭이 결렬되자 몽골은 4차 공격을 감행한다. 역시 실패했다.

20여일 동안 치열한 전투 끝에 구주성의 고려군은 세계 최강 몽골군을 물리쳤다. 고려사는 이렇게 전한다.

'김경손이 임기응변으로 전투자재를 준비해 두었다가 급할 때 쓰는 수법이 귀신 같았다.'

몽골군 진영에 칭기즈칸과 동년배인 70노장이 있었다. 50년을 전장에서 보낸 그는 "내가 20세에 종군하여 천하를 두루 다니며, 성곽과 해자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았으나 이처럼 호된 공격을 받고도 항복하지 않는 곳은 처음 보았다. 구주성 안에 있는 장수들은 반드시 다 재상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몽골은 고려 전역을 점령했지만 끝내 구주성을 점령하지 못했다. 구주성은 조정이 항복한 후 조정의 명을 받아 성문을 열었다. 몽골군은 약속을 지켰고 구주성의 장수들을 무사히 개경으로 귀환했다.

고려후기는 우리 역사상 가장 길고 힘들었던 전란의 시기였다. 몽골의 기병대, 거란의 난민집단, 중국의 민중반란군 홍건적, 바다와 육지에서 마구 날뛰는 왜구까지. 고려는 정말로 다양한 군대와 다양한 방법으로 싸웠다.

이 책은 전쟁과 역사 시리즈 세 번째 권으로 고려후기인 12∼14세기를 다루고 있다. 지은이는 동서양을 꿰뚫는 방대한 전쟁 관련 지식, 답사를 통해 생생한 전쟁사를 그려내고 있다. 지은이의 매력적인 글솜씨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376쪽, 1만7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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