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의 시사코멘트] 행정구역과 위계조직

입력 2008-11-08 06:00:00

며칠 전에 한나라당의 권경석 의원이 행정구역 개편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행정구역을 개편하자고 주장했다. 최근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개편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제 본격적 논의가 시작된 셈이다.

행정구역에 관한 논의에서 근본적 중요성을 지닌 것은 행정구역이 위계조직(hierarchy)이라는 사실이다. 집들이 모여 읍·면·동을 이루고, 그것들이 모여 시·군·구를 이루고, 다시 그것들이 광역시와 도를 이룬다. 당연히, 행정구역에 관한 논의는 위계조직의 성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위계조직은 '모듈을 단위로 삼는 구조(modular structure)'다. 대부분의 물건들은 부품들로 이루어지고 그 부품들은 다시 하위 부품들로 이루어지는 구조를 지닌다. 조직도 마찬가지니, 구성원들 몇이 과를 이루고 과들 몇이 부를, 부들 몇이 회사를 이루는 식이다.

이런 위계조직은 실은 보편적이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은 모듈을 단위로 삼는 위계조직으로 이루어진다. 세포들이 모여 기관을 이루고 기관들이 모여 몸을 이룬다.

위계조직이 보편적인 까닭은 그것이 안정적이면서도 유연하기 때문이다. 위계조직의 단위 조직들은 결속력이 크면서도 다른 단위들로부터는 상당한 독립성을 지녔다. 그래서 한 단위에서 일어난 변화의 영향이 전체 조직으로 파급되는 경우는 드물다. 자연히, 조직이 안정적이다.

아울러, 그런 구조에선 어떤 단위에 일어난 문제에 쉽게 대응할 수 있다. 자동차가 고장 나면, 고장을 일으킨 부품들을 바꾸면 된다. 몸의 병든 기관을 수술하고 심지어 다른 사람의 기관이나 인공 기관으로 바꾸고도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은 그런 사정 덕분이다.

위계조직의 안전성과 유연성은 정보 처리에서의 효율을 부른다. 아무런 조직이 없는 상태에선,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위계조직이 들어서면, 그런 관계는 크게 줄어든다. 예컨대, 85명으로 이루어진 집단의 경우, 위계조직이 없으면, 모두 84개의 관계를 서로 지녀야 한다. 그러나 한 사람이 네 사람을 지휘하는 위계조직이 들어서면, 개인들 사이의 관계는 많아도 8개를 넘지 않는다.

행정구역에 관한 논의에서 핵심은 광역시와 도의 존치 여부다. 현행 1특별시, 6광역시, 8도, 1특별자치도를 그대로 두자는 의견과 없애자는 의견이 맞서왔다.

위계조직의 성격을 고려하면, 광역시와 도는 그대로 두는 것이 옳다. 그것들이 없으면, 통제의 폭(span of control)이 너무 늘어나서, 위계조직의 이점을 살리기 어렵다. 층을 하나 없애서 얻을 이익보다 손실이 훨씬 클 터이다.

아울러 고려할 점은 도가 오랜 역사를 지닌 행정구역이라는 사실이다. 전국을 도로 나누는 관행은 고려 초기에 시작되었고, 전국을 우리에게 익숙한 8도로 나눈 것은 조선 초기였다. 그렇게 오랜 역사를 지닌 관행은 가볍게 건드릴 수 없다. 그런 관행에 바탕을 두고 정보가 처리되었고 문화가 진화했다. 조선조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지리적 조건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행정구역 개편은 차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처리되어야 할 일이다. 정치적 이해가 얽혀서, 실제로는 결론이 쉽게 날 일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광역시와 도를 그대로 두는 방안이 대안보다 온당해 보인다는 점이다.

복거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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