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 그림책에 푹 빠져들다

입력 2008-11-08 06:00:00

▲ 그림책 마니아들이 행복한그림동화책연구소에 모여 그림책을 읽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이정화 백명아 안정옥 이진우 김민정 최미선씨.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그림책 마니아들이 행복한그림동화책연구소에 모여 그림책을 읽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이정화 백명아 안정옥 이진우 김민정 최미선씨.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그림책은 단지 아이들만 보는 책일까. 일본 융 학파의 대가인 가와이 하야오(1928~2006)는 이렇게 말했다. "그림책은 0세부터 100세까지 즐길 수 있는 책"이라고. 그림책이 가져다주는 매력에 푹 빠져든 어른들이 있다. 이들은 그림책을 보면서 행복을 찾고 그림책의 정서적 치유 효과를 믿으며, 추억의 불을 다시 지핀다. 자칭 '그림책 마니아'라는 김민정(32·여), 백명아(29·여), 안정옥(38·여), 이정화(40·여), 이진우(34), 최미선(39·여)씨를 지난 10일 만났다. 이 가운데 김민정씨는 심리치료사로 활동하고 있고, 이진우씨는 구미에서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나머지 4명은 가정주부다. 직업과 관련됐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림책에 대한 이들의 열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이들에게 그림책은 꿈으로 가득한 '마술단지'이다.

◆첫눈에 빠져 들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점은 같지만 이들이 그림책과 인연을 맺은 배경은 각기 조금씩 다르다. 주부들은 자녀 교육 때문에 그림책을 접했다가 매력에 빠져들었다. 백명아씨는 2002년 대학교 휴학 중 성당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하면서 그림책과 우연히 접하게 됐다. 아이들을 위해 '강아지똥' 비디오를 틀었는데 어느새 자기가 감화가 돼 눈물을 주르륵 흘렸단다. 백씨는 "부모님의 뜻에 반한 행동으로 집에서 '찬밥 신세'였는데 그림책 '강아지똥'을 보고 내 안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나중에 서점에서 책을 발견하고 나서 그림책을 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림책을 읽은 지 10년쯤 됐다는 안정옥씨는 "아이 교육 목적으로 그림책을 보게 됐다. 처음엔 '의무 반 책임 반'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점점 빠져들었다"며 예찬론을 폈다. 이정화씨는 출산 이후 아이와의 놀이 수단을 다양화하는 데 동화책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에 그림책을 잡았다. 최미선씨도 초교 3년생인 큰 아이가 어릴 때 '아이에게 좀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림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여섯명 가운데 유일한 청일점인 이진우 원장은 약속장소로 서점을 잡았다가 그림책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국내에서 그림책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때였어요. 그림책 코너에 갔다가 책을 읽었는데, 원래 그림책 한 권은 5분이면 완독하니 부담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자연스레 취미활동이 됐죠."

이들은 한결같이 "그림책을 통해 무언가를 배웠다"고 입을 모았다. 안정옥씨는 "나는 그림책에서 내 꿈을 본다. 이를 느껴 보려는 노력을 통해 마음의 치유도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화씨는 "초교 4년, 7세 아이들과 소통하는 데 그림책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백명아씨는 논술학원에서 초교 5, 6년생을 대상으로 집중력 강화 훈련을 하면서 그림책을 사용했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보여주며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니 아이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걸 보았다고 했다.

◆그림책, 나를 키우는 성장도구

이들은 그림책을 통해 받은 감동을 주위에 나눠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미선씨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참가해 동화 구연을 하고 있다. 저소득층 자녀를 대상으로 동화 구연을 했더니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단다. 이정화씨는 그림책을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을 한다. 자녀 학교에서 1일 교사를 하게 되면 꼭 그림책을 읽어준다. 대구 상인역에 위치한 한 어린이서점에서 일도 한다. 이진우 원장은 유치원생들에게 그림책 한 권씩 가져오도록 한다고 했다. 원생들은 자신이 가져온 책은 물론 다른 아이들의 책까지 읽을 수 있다. 1년 후에는 자기의 책을 갖고 가지만 원생들은 이미 수십권의 책을 읽게 된다.

이들이 처음 그림책을 손에 들었을 때 주변의 시선은 "무슨 어른이 그림책이냐"는 반응이 많았다. 그냥 '키덜트(Kidult: 아이 같은 취미를 즐기는 어른)'의 단순한 취미 정도로만 보는 이도 있었다. 이 원장은 "당시엔 몰랐는데 서점에서 그림책 주변에 서성거릴 때 주변의 시선이 이상했던 것 같다"며 웃음 지었다.

그림책 마니아들은 대부분 한 달에 약 15만원 안팎을 그림책 구입에 쓴다고 했다. 백씨는 "'지름신이 내리면' 한 달에 30만원씩 쓴 적도 있다"고 했다. 안씨도 "사교육비 대신 그림책에 투자한다는 마음으로 구매하는데 월 50만원을 쓴 적도 있다"고 밝혔다. 소장 중인 그림책도 많다. 안씨는 "세어 본 적은 없는데 보는 사람 모두 놀라며 '간이도서관 수준'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유치원에 3년째 700권 이상을 모았다"고 했다. 그래도 누구 하나 그림책 사는 데 쓴 돈을 아깝다는 사람은 없었다.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 인생의 다양한 면모를 담아내는 작품, 사람에게 심리적 안정과 교육적 효과까지 주는 작품에 대한 비용으로 1만원 정도는 오히려 싸다는 것이다.

어느새 그림책 전문가가 된 이들이 바라는 그림책이 있을까? 김민정씨는 "출산을 거쳐 엄마가 되는 과정에 대한 그림책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미선씨는 "딸에게 엄마가 자란 과정에 대해 말해줄 때 필요한 책"을 원했다. 안정옥씨는 "예전 고전이 그러한 것처럼 삶에 대해 전반적으로, 밀도 있게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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