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딸 같은 젊은이들이 '아버님'이라 부르면서 안마도 해주고 하는 통에 내가 잠시 정신을 놓았나 봅니다."
대구 달서구에 사는 이모(66)씨는 지난주 경주 보문단지로 관광을 다녀온 뒤로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다. 찜질방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 관광업체 직원으로부터 공짜 효도 관광을 보내 준다는 말에 솔깃해 따라나섰다가 한약 1첩을 74만원이나 주고 구입했던 것. 즉석에서 건강검진을 받고 한약을 지은 터라 환불도 할 수 없다. 그는 "아들 내외를 볼 면목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가을 단풍놀이철을 맞아 노인을 대상으로 '효도관광' '홍보관 체험' 등을 빙자해 물품을 강매하고 폭리를 일삼는 악덕 상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65세 이상 노인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노인 절반이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무료관광, 당첨, 공연 등을 미끼로 접근하는 불법·부당 판매행위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 소비자연맹에도 9, 10월 두 달 동안 40여 건의 피해 사례가 접수됐다.
수성구에 사는 김모(67·여)씨는 2주 전 경로당에 갔다가 한 방문판매 사원으로부터 50만원짜리 온수 매트를 구입했다. 김씨는 "온수 매트를 쓰면 관절염이 말끔히 낫는다는 말을 듣고 10개월 카드 할부로 샀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시중에 파는 20만원짜리 온수매트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었다"며 후회했다.
일부 판매업자들은 의심을 피하기 위해 관공서를 팔기도 한다.
구청에서 보내주는 복지 관광이라는 말을 듣고 보름 전 안동을 여행했던 이모(66·여)씨는 생각지도 못했던 60만원짜리 홍삼 엑기스를 구입해 놓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씨는 "경로당에 찾아온 젊은 남자가 '구청에서 어르신들을 위해 보내주는 관광'이라고 해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뒤늦게 후회해도 반품은 거의 불가능하다. 판매업자들은 반품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일부러 그 자리에서 물건이 확실한지 뜯어보길 권하는 수법을 흔히 쓴다. 물건을 뜯으면 반품을 할 수 없는 점을 노린 것. 또 소비자들의 반품 요구를 차일피일 미루다 반품 기일을 넘길 때까지 '나 몰라라' 하는 업체도 있다. 방문판매에 관한 법률상 상품 구입 후 14일이 지나면 반품을 해 줄 의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대구소비자연맹 박수진 상담팀장은 "반품 요구는 서면으로 해야 하는데 일반인들은 이점을 잘 모른다"며 "판단력이 약한 노인들이니만큼 가족들이 대화를 통해 주의를 기울이는 방법 외엔 달리 방도가 없다"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지난달 2일 '노인의 날'을 맞아 부적절한 판매행위로 인한 노인들의 피해를 막고 구제하기 위해 '노인 소비자 권익보호 대책'을 마련, 추진키로 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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