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마고우인 친구 하나가 미국에 살고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라 지구상의 웬만한 곳은 다 가본 친구다. 그런데 그 친구는 최소한 3년에 한 번씩은 꼭 한국을 방문한다. 이번에는 치질 수술과 종합검진을 받기 위해서 방문했다.
그 친구의 표현에 의하면 세상에 한국만큼 의료에 관한 한 더 이상의 천국은 없다고 한다. 의료시설도 손색없는데다 의료수가도 싸고 무엇보다 하루 만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진료를 할 수 있는 곳은 오로지 한국뿐이라는 것이다. 그 친구가 직접 의료경험을 했다는 나라는 모두 네 곳이다. 미국과 멕시코, 유럽의 선진국인 영국, 그리고 한국이다.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미국의 의료제도에 대해서는 아예 머리를 흔들었다. 의료제도가 너무 경제 논리로 발전하다 보니 의료 기술과 장비는 세계 최고지만 너무 의사 위주라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후진국처럼 의료 혜택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돈도 없고 건강보험도 없어서 찢어진 자신의 무릎을 스스로 꿰매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Sicko)가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한국이 유전무죄, 무전유죄 공화국이라면 미국은 '유전무병, 무전유병' 공화국이란 것이다.
멕시코는 미국보다 더 나빴다는 것이 그 친구의 경험담이다. 멕시코에 여행을 갔을 때 일행 중 한 명이 사고로 배를 젓는 노에 허리를 맞아 병원에 간 적이 있는데 첫 번째 방문한 병원에는 엑스레이 찍는 기계가 없었고, 두 번째 방문한 병원에는 의사가 외출 중이었으며, 세 번째 방문한 병원에는 약이 없어 마침내 해군병원에 가서야 제대로 진찰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영국을 방문했었던 그 친구는 골프공에 늑골을 맞아 갈비뼈에 금이 가는 중상을 입었다.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순간부터 며칠에 걸쳐 치료를 다 받을 때까지 단 1파운드의 치료비도 내지 않았으며 병원에는 돈을 받는 수납창구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나라도 있느냐?"는 친구의 감탄에 그를 영국으로 초청했던 친구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자네 병원비는 몇 년에 걸쳐서 내가 이미 내놓았네"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했다는 것이다. 설명인즉 영국은 전 국민 의료보험이 되어 있으며 여행자나 유학생이라도 영국 현지에서 다치거나 병이 나면 영국정부가 다 치료해 준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보험료였다. 한마디로, 국민에게 돌아가는 의료비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자신도 급여의 40%를 세금으로 원천징수당하는데 그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의료보험 비용이라는 것이었다. 친구의 아내가 아파 병원을 찾았는데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일차 진료의를 거쳐 위내시경 하는데 2주일, 다시 일차 진료의를 거쳐 장내시경을 한번 하는데 3주일, 또다시 2차 진료의를 거쳐 복부 초음파 한 번 찍는데 2주일 하는 식으로, 한국에서는 하루면 할 수 있는 검사를 한 달 넘게 걸쳐 받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는 것이다.
지난달 한국에 와서 치질수술을 받고 갔던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은 의료천국이야. 예약도, 대기도 없이 병원에만 가면 의사를 만날 수 있고 하루 만에 신체 구석구석을 다 검진받을 수 있으니 이런 나라가 또 어디 있겠어"라고.
지금 '의료 허브 대구'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들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미용수술이든 한방 치료든 혹은 종합건강검진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대구는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고속철도와 사통팔달로 뚫린 도로로 대구의 환자들이 타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지역 의료계의 큰 걱정이라고 하지만 '대구'를 '한국의 의료 허브'로 만들어 전국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환자들이 몰려오는 곳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임상 분야에 경쟁력이 있고, 임상 경험이 풍부한 실력 있는 의료진이 양성되어야 하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시설,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어야겠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중복되는 진료 분야는 각 의료기관에서 서로 양보하여 특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의 의료수가가 너무 싸고 한국 의사들이 다른 나라 의사에 비해 혹사당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늦어도 2, 3년 안에 또다시 조국을 찾고, 나를 찾아올 친구가 벌써 그리워진다.
우상현(수부외과 세부 전문의/의학박사)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