農 심마니들, 고령 청룡산 자락서 산신제 올려

입력 2008-11-04 08:46:19

▲ 농 심마니 회원들이 산삼 심기에 앞서
▲ 농 심마니 회원들이 산삼 심기에 앞서 "산삼을 잘 자라게 해 달라"며 산신제를 올리고 있다. 최재수기자

지난 2일 오전 고령군 우곡면 청룡산 자락. 50여명의 농(農) 심마니들이 산신제를 올리고 있었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돼지머리와 떡, 과일 등을 차려놓고 제문을 낭독하고, 춤을 추며 산신께 '오늘 심을 산삼을 잘 자라게 해줄 것'을 빌었다.

산신제를 올린 뒤 이들은 산삼의 신비와 귀함을 토론하고, 심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산삼 생육에 적합한 지역을 찾아 묘삼(苗蔘·2, 3년생 산삼)과 산삼씨 등 500여수를 정성스럽게 심고, 뿌렸다.

이날 이곳에 산삼을 심은 사람들은 전국의 산을 찾아다니며 산삼을 심는 농 심마니 회원들. 산삼을 캐는 심마니에 '심는다'는 뜻의 '농(農)'자를 붙여 만든 이들은 산삼을 캐는 데는 관심이 없다. 오직 산삼을 심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농 심마니 박인식(57) 회장은 "산삼을 심되 캐먹지는 않아요. 21년 전 모임 결성 때부터 이 약속을 지켜왔습니다. 우리는 캐는 데는 관심이 없어요. 전날 기를 모으기 위해 밤새 신명나게 놀고는 다음날 산에 오릅니다.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산삼을 심으니 어디 심었는지 모르죠"라며 빙그레 웃는다.

이날 처음 참여해 산삼을 심어봤다는 김미주(40·여·서울 장안동)씨는 "산삼을 캐는 줄만 알았지 이렇게 심는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10년, 20년 아니면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가 오늘 내가 심은 산삼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신이 난다"며 "뿌듯한 일을 한 것만 같다"고 흐뭇해 했다.

농 심마니는 1986년 전국 산을 산삼밭으로 되돌려 놓자며 문화·예술계 인사들 중심으로 결성돼 1987년 재배삼 시원지로 알려진 전남 화순군 동복면 모후산에서 산삼 심기를 시작했다. 이들은 매년 봄과 가을 두차례 전국의 산을 찾아다니며 산삼 씨앗을 뿌리고, 묘삼을 심는다. 1987년 이후 44번 행사를 치르는 동안 한번도 거른 적이 없다. 현재 회원은 150여명. 지금까지 심은 산삼만 무려 3만주에 이른다.

농 심마니는 올 연말쯤 산삼을 관리하고 공인, 감정해주는 '산삼공사' 설립을 정부에 제안할 계획이다.

고령·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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