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해변. 한 떼의 젊은이들이 청춘을 불사르고 있다. 신음소리가 새어나오는 열린 창문 사이로 카메라가 다가간다. 그리고 젊은 여인의 나신을 향해 셔터가 내려간다. 이 사진은 두고두고 영국정부를 괴롭히고, 급기야 어중이떠중이들로 구성된 은행털이범들의 발목을 잡는다.
'노 웨이 아웃' '겟어웨이' 등 스릴러에 일가견을 가진 로저 도날드슨 감독의 '뱅크잡'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릴러영화다. '은행 일(?)' 또는 '은행털이'로 해석될 영화의 제목대로 은행의 안전 금고를 터는 3류 인생들이 주인공이다.
1971년. 카 딜러 테리(제이슨 스태덤)는 은행 경보장치가 24시간 해제되는 로이드 은행을 털자는 옛 애인 마틴(섀프론 버로즈)의 제안을 받는다. 빚에 쪼들리던 그는 친구인 포르노 배우, 사진작가, 콘크리트 전문가, 양복 재단사 등을 불러 모아 거사를 준비한다. 7인의 아마추어 절도단은 13m의 지하터널을 뚫고 은행 금고에 도착해 수백 개의 금고에 보관 중이던 돈과 보석 등 수백만 파운드의 금품을 훔친다.
완전범죄라고 좋아하는 이들을 쫓는 이들이 있었다. 경찰은 물론이고, 부패경찰의 명단을 도둑맞은 범죄조직, 정부를 협박하던 흑인단체, 사창가에서 불미스런 짓을 하다 사진 찍힌 정치인, 거기에 영국 정보국인 MI5까지. 어설프게 시작한 은행털이범들은 자신들을 쫓는 거대한 힘에 아연 실색한다.
'뱅크잡'은 실화의 힘에 잘 짜여진 플롯, 적당한 액션에 긴장감 넘치는 연출까지 군더더기 없는 범죄 드라마다.
이 이야기는 1971년 런던 로이즈 은행에서 발생해 현재까지도 미해결로 남아 있는 은행털이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체포된 범인이 단 한 명도 없고, 영국 정보국에서도 2054년까지 기밀로 분류했을 만큼 베일에 가려진 사건이다. 영국 왕실의 치부와 연결된 갖가지 소문들이 떠돌았다.
'뱅크잡'은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곪은 지도층과 겉은 형편없는 삶을 살며 범죄에 노출돼 있지만 적어도 사악하지는 않은 은행털이범의 대결점이 포인트다. 은행을 터는 것도 가족들에게 잘 먹이고 잘 입히기 위한 소박한(?) 이유다. 그래서 영화가 시작되면서 이미 관객은 은행털이범과 공감대가 형성된다.
은행을 털 때의 긴장 이후 벌어지는 거대한 집단과 맞서 싸우는 특급 긴장까지 더해 영화는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트랜스포터'의 제이슨 스태덤이 가족과 조직원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 테리 역을 맡았다. 현재 상영 중인 '데쓰 레이스'까지 많은 액션물에 출연했지만, '뱅크잡'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레인 오버 미', '클림트'의 세프론 버로우즈가 마틴 역을 연기했으며,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스티븐 켐벨 무어, '어톤먼트'의 다니엘 메이즈 등이 출연한다. 가을에 찾아온 뒤늦은 스릴러이지만, 긴장감 넘치는 영화를 찾는 이들에게 제격이다. 111분. 15세 관람가.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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