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공연을 위해서는 아주 많은 분야의 협조가 필요하며 그 하나하나는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에서도 공연의 성공을 위해서 결정적인 것의 하나가 분장이라는 분야다. 오페라에서 분장은 관객들이 극중으로 몰입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분장을 하며 가수들이 직접 얼굴을 만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전문가들을 분장사라고 부른다.
오페라 프로그램이나 공연의 DVD 등을 보면 가수나 지휘자 등의 연주가나 연주 단체 그리고 그 다음으로 스태프들의 이름이 활자로 나열된다. 즉 연출가를 필두로 무대 디자이너, 의상 디자이너, 조명 디자이너 그리고 안무가 등의 이름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 이름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이 분장사이다. 그런 만큼 분장사는 그야말로 이름도 없이 무대 뒤에서 묵묵히 공연을 위해서 애쓰는 사람인 것이다.
분장사는 당연히 분장을 위한 모든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분장을 잘하거나 솜씨가 좋다고 하여 훌륭한 오페라 분장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 누구 못지않게 작품에 대해서 많은 공부가 되어 있어야 한다. 즉 그 오페라가 어떤 시대의 것이며 어떤 나라의 것인지는 물론이고, 문화적 환경을 알고 있어야만 제대로 된 분장을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 자체의 공부나 배경에 대한 연구는 물론이고 그 시대의 사회사, 문화사 그리고 풍속사에 대해서도 식견이 있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생상의 오페라 를 공연한다면 무려 3천년 전, 정확히 기원전 1150년경 팔레스타인의 가자 지방 사람들이 어떤 모습이었으며 여인들은 어떤 화장을 하고 있었는지 게다가 여염집 여인과 무희들은 화장이 어떻게 달랐는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델릴라로 나오는 여주인공은 펠리시테인으로서 그들이 과연 동양계인지 아니면 블랙아프리카계인지 아니면 인도유러피언인지도 알아야 한다.(요즘 델릴라는 검은 피부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그런 자료를 얻는다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장사는 그 시대의 얼굴을 재현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베르디의 같은 작품이라면 '파라오의 시대'이므로 이집트의 고대사를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푸치니의 라면 '전설의 시대'로 명시되어 있으므로, 중국 고대사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상상력의 범위도 시험받게 되는 것이다. 그 외에도 마이어베어의 은 마다가스카르, 비제의 는 스리랑카, 베르디의 은 잉카인들의 얼굴을 알고 있어야 한다. 또한 베르디의 같은 작품은 프롤로그와 1막 사이에 무려 25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모든 출연진들의 분장을 그에 맞게 변환시켜야 한다. 푸치니의 에서는 1막과 2막 사이에 3년의 세월이 있을 뿐 아니라, 2막에서는 기다림의 수심으로 지친 여인을 만들어야 한다.
게다가 분장사는 연출가가 어떤 설정을 하는지, 무대 및 의상 디자이너가 어떤 콘셉트로 무대를 꾸미는지도 알고 그들과 면밀한 협력이 있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조명 디자이너와 협조하여 어떤 조명하에서 얼굴이 어떻게 보이게 되는지도 미리 예측하여야 한다.
그러면서도 공연 내내 나가고 들어오는 가수와 출연자들의 얼굴을 체크하여야 하고 막간마다 분장을 다시 바꾸는 등 쉬지도 못하며 정작 공연을 볼 수도 없는 것이 분장사이다.
박종호(오페라 평론가,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