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기행]팔공산 ' 나무@906'

입력 2008-10-30 06:00:00

참 '희한한'카페를 만났다. 지난해 봄 팔공산 자락에 오픈한 레스토랑 '나무@906(053-981-9066) '은 장사꾼 냄새 대신 풋풋한 향기가 느껴진다. 사장도, 종업원도 따로 없다. 그냥 주방 '아줌마, 아저씨'가 있고 '식구'가 있을 뿐이다.

전직 약사, 사업가, 요가 선생님, 컴퓨터프로그래머, 유치원 선생님, 물리치료사, 심리치료사, 음악치료사…. 이 카페의 주인장들이다. 이들은 많게는 20년 이상 인연을 이어오면서 '웰니스(Wellness)'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추구해오던 지기(知己)들. 함께 자주 어울리며 먹고, 즐기고, 공부하던 사람들 10여명이 우연찮게 이 공간을 만들게 되면서 함께 주인장 역할을 하고 있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주방에서 요리를 만들어내고 별달리 할 줄 아는게 없는 사람은 서빙이나 설거지를 한다. 오랜 세월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이라서일까. 정서적으론 가족이나 마찬가지. 서로를 '식구'라고 부른다.

나무@906은 건물 자체가 하나의 볼거리다. 건축가 박재봉씨의 작품으로 주변의 고즈넉한 풍경을 해치지 않고 고스란히 건물에 담아내는 어울림이 있다. 흙'자갈 등을 다져서 쌓은 담틀벽은 자연스럽게 조형미를 형성, 더없이 소박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다음으로 눈길이 가는 것은 메뉴판. '돌담에 비친 햇살'(등심 떡갈비, 1만8천원), '나무에 스친 바람'(버섯과 야채로 속을 채운 닭가슴살구이, 1만8천원), '구름을 타고 온 바다'(각종 허브로 양념한 연어구이, 2만원), '노을이 만난 저녁달'(새우,버섯 와인찜, 2만2천원) 등으로 그 이름이 독특하다.

요식업에 종사한 적이 없는 아마추어들이 모였지만 그렇다고 음식마저 아마추어는 아니다. 50년 이상 시댁에서 이어져오던 떡갈비 비법과 소스를 메뉴화하기도 하고 태국 쿠킹스쿨에서 식구들이 직접 배워온 현지 요리를 우리 입맛에 맞게 변형시키기도 했다.

독특하고 이색적인 메뉴들이라 출처를 물어보니, 이 모임 사람들이 오랫동안 즐겨오던 메뉴란다. 그저 우리끼리 먹던 것,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자는 의미란다.

이들 음식은 여타의 레스토랑과 달리 홈메이드 음식들이다. 조미료는 물론 반조리식품의 사용마저 거부한다. 와플은 케익을 굽듯 직접 반죽을 해서 판매한다. 1조각 5천원, 4조각 1만2천원. 이 때문에 먹고 나도 속이 편안하다. 장사꾼 소질이 없는 이들은 차 재료도 최상급으로 사용한다. 홍보를 전혀 하지 않아 처음엔 운영을 걱정할 정도였지만 지금은 입소문이 나면서 마니아들이 꽤 늘었다.

건물 또한 '핸드메이드'다. 공사기간 1년여동안 돌담도 쌓고 칠도 직접 하는 등 모임 사람들의 손이 안간 곳이 없다. 게다가 수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솜씨가 더해졌다. 그래서 더욱 정이 가는 공간이다.

가족같은 분위기 때문일까. 손님들도 두세번 발걸음하면 금세 무장해제된다. 손님들이 자체적으로 싸이클럽을 운영하기도 하고 자진해서 블로그에 카페를 홍보한다. 심지어는 바쁠 때 "미안하지만 설거지좀 해줄래요?"라고 말할 수 있고, 이를 기꺼워하며 받아줄 수 있는 손님들도 꽤 있다.

'웰니스'를 추구하는 식구들이 추구하는 것은 비단 공간과 음식 뿐이 아니다. 함께 즐기는 문화도 공유한다. 아직은 대구 사람들에게 어색하기만한 파티를 일년에 3,4번 연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31일 할로윈 파티를 연다. "파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색해하지만 일단 한번만 참가해보면 너무나 즐거워한다"는 것이 식구들의 증언. 일 년에 두 번쯤 음악회도 연다.

팔공산 파계사 방향으로 가다가 파계사 검문소 직전에 좌회전하면 된다. 내세우는 것에 익숙치 못한 주인장들의 성격 탓에 간판이 소박해 지나치기 쉽다. 평일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런치타임에는 메뉴가격을 3천원 할인해준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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