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한 바람에 가슴이 '휭~
인생을 계절에 비유하면 봄은 유아기, 여름은 청년기, 가을은 중년기이다. 중년은 결실을 거두는 동시에 노년(겨울)을 대비해야 하는 시기다. 서쪽 하늘을 화려하게 물들이는 노을이 아름답지만 쓸쓸하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논어에는 40대를 불혹(不惑:온갖 유혹에 흔들리지 않음), 50대를 지천명(知天命:하늘의 뜻을 앎)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 오늘날 한국 사회 중년의 삶은 어떨까. 가을과 어떤 단상으로 연관될까.
'
#중년은 거리에 뒹구는 낙엽처럼 외롭다
386세대와 한국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세대가 주축을 이룬 한국의 중년세대는 사회변혁 과정에서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형성하며 한국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사회에서 젊은 세대에게는 기성세대의 일부로, 윗세대에게는 비교적 어린 세대로 취급받고 있다.
가정 내 입지도 줄어든다. 자신보다 더 덩치가 커진 아이들은 부모와 거리감을 두려하고, 오랫동안 살을 맞대고 살아온 배우자도 점점 낯설게 느껴진다. '뭐하며 살았나'라는 회한이 밀려와 우울증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은 까닭이다.
특히 가을에 겪는 상실감은 여자보다 남자가 더 크다. '여자는 봄을 타고, 남자는 가을을 탄다'는 말이 있듯이 스산한 바람이 불면 중년의 가슴은 더욱 시리다. 남자들이 가을을 더 타는 이유는 뭘까? 의학에서는 생체시계의 차이로 설명한다. 생체시계가 여성은 봄에, 남성은 가을에 맞춰져 있어서 일조량이 늘어나는 봄에 여성의 기분변화가 두드러지고 일조량이 줄어드는 가을에는 남성의 멜라토닌 분비가 증가되어 기분변화를 초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풍성한 계절이지만 불안한 미래를 걱정한다
정보화 사회는 중년에게 신지식과 정보 흡수를 발빠르게 요구하지만 힘에 부친다. 중년이 되면 지출도 많이 늘어난다. 사교육비 부담이 급격히 증가하고 자녀 혼사도 치뤄야 한다. 부모도 연로해져 경제적 의존도가 커지고 병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현실은 40대가 되면 벌써 구조조정 대상이 되고 남편 월급을 쪼개 알뜰하게 살아온 아내는 살림 걱정을 해야 한다.
은행에 다니는 김모(45)씨의 마음은 뒤숭숭하다. 최근 명예퇴직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선배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를 떠났기 때문이다. 과거 좋은 시절, 은행에서 퇴직하면 제2금융권에서 새 직장을 얻는 것이 어렵지 않았지만 지금은 받아 주는 곳이 없다. 선배의 퇴직이 남의 일같지 않아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졌다.
마음과마음병원 김성미 원장은 "가을이 결실의 계절이라는 점이 남자들에게 더 위협적일 수 있다. 성취를 통해 존재감을 찾으려는 남자들은 자기가 한 일을 평가하면서 못다 이룬 것에 대한 자기비난으로 의기소침해지기 쉽다. 특히 40, 50대에게는 심리적 위기감이 올 수 있다. 어느날 문득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고 내리막길만 남았다는 심리적 공황상태인 상승정지증후군에 시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름다운 노을처럼 화려한 반란을 꿈꾼다
평균연령이 길어지면서 중년 이후의 삶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요즘 중년층은 '나이 보다 젊게 보인다'는 말을 듣기 좋아하고 이를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 삼성패션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캐주얼 의류시장에서 40~50대 고객 비중이 2005년 50%를 넘어섰다. 패션에 대한 중년층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는 노무(NOMU-No More Uncle)족과 노마(NOMA-No More Aunt)족이라는 용어도 생겨났다.
피부 관리에 신경쓰는 중년 남성들을 겨냥한 화장품도 쏟아지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스킨'로션'크림 등으로 구성된 중년 남성용 화장품을 새로 출시했다. 아모레퍼시픽 대구지역사업부 황수진 대리는 "피부가 경쟁력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요즘은 여자보다 남자들이 외모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며 "스킨'로션은 기본이고 에센스'아이크림까지 바르는 중년 남성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악기, 춤을 배우거나 동호회 모임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자신의 밖에서 찾지 못하는 가치를 자신의 안에서 찾으려는 움직임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