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악어의 눈물

입력 2008-10-28 10:58:23

앨런 그린스펀. 그는 누구인가. 1987년부터 2006년까지 무려 20년 동안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맡아 미국경제와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했던 인물이다. 그가 거쳐간 미국 대통령만 해도 레이건에서 시작해 아버지 부시, 클린턴, 아들 부시까지 4명에 이른다. 그가 재임하는 동안 미국의 나스닥과 다우지수는 사상 최고로 올랐다. 출렁이던 시장은 그의 금리나 금융정책에 관한 한 마디로 안정을 되찾곤 했다. 이른바 그린스펀 효과를 만들어냈다. 그는 철저한 시장자유론자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최근 참담한 고백을 했다. 지난주 열린 미 하원 청문회에서 자신의 시장자유론을 언급하면서 "결점이 있음을 발견했다"고 말한 것이다. 시장자유 속에서 금융기관들이 주주와 투자자들의 자산을 보호해 줄지 알았는데 그렇지 못해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왁스맨 의원이 '달리 말해 당신의 이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뜻 아니냐'고 다그치자 "절대적으로, 간단히 말해(그렇다)"라며 시인했다.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던 인물이 세계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내몰리자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무디스 그는 또 누구인가. 한국정부가 외환위기를 맞아 국제 통화기금과 피를 말리는 협상을 하던 1997년 11월 27일에서 12월 22일까지 1개월도 안 되는 동안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A1에서 Ba1으로 무려 7단계나 낮췄던 신용평가기관이다. 졸지에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은 투기등급으로 몰락하고 국가부도의 위기까지 몰리는 경험을 했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내세우며 악마처럼 굴던 그 기관의 직원들이 이제야 "우리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고 고백했다. 경쟁사를 제치고 유가증권 평가 업무를 따내기 위해 엉터리 평가도 마다 않았다고 인정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사상 유례없는 금융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시장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하리라는 기대는 허무하게 무너졌다. 미국과 유럽까지 정부의 시장 개입을 당연시하고 오히려 이를 요구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세계는 어떤 처방도 받아들이지 않는 공황상태다. 이 모든 위기의 출발점이 된 원인제공자들의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부끄러운 고백을 들으면 악어의 눈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창룡 논설위원 jc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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