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돌보듯 장난감 세균 제거…아이 건강 지킴이로 '제2 인생'
지난 24일 오후 2시쯤 대구 달서구 죽전동의 한 상가 1층. 120㎡ 남짓한 실내에는 소방차, 경찰차, 공룡, 소꿉놀이 주방 도구 등 수십 가지 장난감들로 넘쳐났다. 장난감 가게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널찍한 탁자에 6명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둘러앉아 하얀색 고무 앞치마를 두른 채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진공 청소기 모양을 한 기계에서 하얀 증기가 계속 뿜어져 나왔다. 노인들은 손에 든 장난감을 증기에 쏘이느라 이리저리 돌렸다.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창업한 장난감 세척공장 '토이앤시니어(053-572-0119)'가 창업 1년 만에 성공 궤도에 올랐다. 달서시니어클럽이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지원·개업한 이 곳에는 일반 가정에서부터 유치원, 대형마트까지 장난감 세척을 의뢰하는 주문이 폭주하고 있다.
달서시니어클럽 류우하 관장은 "장난감 세척 주문이 한 달에 50건 이상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노인들이 모여 일하다 보니 재밌는 사연도 많다. 유치원으로 출장 세탁을 나갈 때면 친손자·손녀 같은 아이들을 위해 주머니 두둑이 사탕·과자 등 군것질 거리를 챙겨가느라 주머니가 빈다. 지난 삼복 더위에도 아이들에게 한아름 선물을 안겨 '산타'란 별명을 얻었다는 이신일(69) 작업반장은 "노인들끼리 더 좋은 선물을 마련하느라 경쟁이 펼쳐진다"고 말했다.
'토이앤시니어'에서 장난감은 새것처럼 변한다. "장난감에 붙어 있는 세균들은 절대 살아 나갈 수 없다"는 한 노인의 말처럼 작업은 세심하게 이뤄진다. 공장에 들어온 장난감은 일단 물세척→200℃ 고온 증기 살균 처리→물기 제거→자외선 건조 등의 4단계를 거친다. 다시 한번 원적외선 살균, 허브향 주입의 2단계 공정을 더 통과한다.
대형마트, 어린이집 등에는 토이앤시니어에서 보증하는 '세균 박멸 인증서'도 발급해 준다. 인증서를 받은 곳은 정기적으로 서비스 소독까지 받을 수 있다. 아이들 숫자가 가격의 기준이 된다. 아이가 50명인 어린이집은 대략 10만원 내외의 세척비가 들지만 일반 가정의 경우 1만~3만원이 보통이다.
최근에는 어르신들이 대형마트에서 홍보 전단지를 나눠주며 주부들을 상대로 영업을 한다. 하지만 꼭 돈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마른 수건으로 장난감을 닦던 최계화(68) 할머니는 "우리도 손자 손녀를 키우는데 아이들이 세균이 덕지덕지 붙은 장난감을 갖고 논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며 "세균이 타도 대상 1호"라고 말했다.
어르신들은 아이들의 건강 지킴이로 제2의 인생을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순남(70) 할머니는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아이들 건강까지 지킨다고 생각하니 뿌듯하다"며 "일을 시작하고부터 10년은 더 젊어진 것 같다"고 웃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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