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어디론가 여행을 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때가 있었다. 그땐 친구들과 마음도 잘 맞았다. 초·중·고등학교 동창생들 8명. 모임 공지가 뜨면 열 일 제쳐두고 함께 여행을 갔으니 말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특별한 병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무리를 하면 각종 통증에 시달리곤 했다. 이들과의 마지막 여행에서도 그랬다. 김천 직지사 단풍놀이었다.
아침 일찍 시외버스정류장에 모였다. 매번 같은 멤버로 수년 동안 여행을 다녔지만 이 날도 또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간다는 마음에 설렌다.
붉게 물든 단풍나무 숲을 헤치며 약간의 등산도 하고, 은행나무 밑에서 사진도 찍고 가을여행의 재미를 한껏 맛봤다. 특히 이날 여행에서는 또 다른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는 행운까지 얻었다. 세상은 넓고도 좁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이날은 기분 좋은 일들만 이어졌기에 무난히 일정을 소화하나 싶었다. 하지만 오후부터 급격히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구토 때문에 화장실을 오가고 두통약까지 복용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즐거운 여행의 분위기를 망쳐서일까. 친구들의 인상이 나빠졌다. 아픈 나를 챙겨주지 않는 친구들의 모습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럴 만도 했다. 매번 만날 때마다 컨디션이 안 좋으니 자신들을 만나기 싫어 꾀병을 부리는 것이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후론 점차 친구들과 멀어지더니 모임에서 탈퇴하기에 이르렀다. 모임탈퇴로 유일한 고향친구들을 한꺼번에 다 잃게 됐다. 직지사가 마지막 여행이 된 셈이다. 벌써 4년 전 일이다.
고향친구들을 잃은 후, 몇 년을 앓아오다 올해에는 겨우 병명도 알아냈다. 섬유근통증후군. 이유 없이 아파 꾀병으로 오해받는 희귀병이란다. 약물치료도 받고 있다.
단풍나무가 붉게 물들고, 은행잎이 노랗게 변하기 시작하는 이때, 홀로 직지사로 가을여행 한번 떠나볼까 싶다. 그곳에서 4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고향친구들을 우연히 다시 만나 꾀병이 아니었음을 알려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길 기대해 본다.
박현정(대구 달서구 송현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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