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통이 돼가고 있는 펀드계좌. 원금의 절반이 날아가고 없는 주식계좌. 사람들은 참담하다. 백만장자의 길은 이리도 멀고 험한 것일까? 나는 왜 백만장자가 되지 못하는 걸까?
'아빠는 왜 그리 무능하죠?' 자녀들의 눈동자에 이런 문장이 새겨져 있는 것만 같다.
백만장자가 그 어느 때보다 부러운 시절이다. 그들에게 '한 수' 배워볼 수는 없을까?
백만장자의 '노하우'를 들으려면 그들의 동네를 찾아야 할 터. 과연 대구의 백만장자는 어디에 가장 많이 살고 있을까?
◆백만장자의 보금자리는?
기자는 백만장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을 찾기 위해 대구의 한 금융회사에 의뢰, 이 금융회사의 대구지역 VIP고객 동네별 분포 비율을 파악했다. 금융회사들은 보통 5억원 이상을 예치한 사람들을 VIP(금융회사는 이런 손님을 PB·Private Banking 고객이라고 칭한다)로 분류한다. 그런데 많은 부자들이 한 곳의 은행에만 거래하지 않는다. 보통 2, 3곳의 금융회사에 자산을 분산해 놓는다. 자신의 재산 노출을 꺼리기 때문이다.
결국 금융회사가 '모시는' VIP고객은 적어도 15억원 가까이는 갖고 있다고 보면 된다. 요즘 원/달러 환율로 따져볼 때 100만달러, 즉 백만장자의 기준을 충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백만장자들은 어디에 많이 살고 있을까? 결과는 싱거웠다. 백만장자들의 73%가 '대구의 강남' 수성구에 살고 있다.
수성구 중에서는 어느 동네에 백만장자가 가장 많을까? 이 금융회사 통계치로는 수성동이었다. 수성동은 대구시내 전체의 25%를 점유하고 있다. 수성동은 꽤 넓다. 대구은행 본점 주변 동네인데 신세계·화성쌍용·대림e편한세상 등의 아파트가 있다. 이들 아파트를 중심으로 백만장자가 많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다음은 범어동이다. 전체 비율의 12.5%. 12%의 황금동, 10%의 만촌동이 그 뒤를 잇는다.
한때 잘나갔던 지산·범물은 6%에 머물렀다. 이곳 백만장자들 상당수가 황금동이나 범어동쪽으로 떠났다는 것이 금융회사 관계자들 설명이다.
시지지역은 3%에 머물렀다. 단독주택 밀집지인 상동이 3%, 역시 단독주택이 많은 중동은 1.5%였다.
그렇다면 백만장자들은 왜 수성구를 좋아할까? 물론 대구의 최고 명문학군이라는 이점도 있지만 다른 장점도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현대백화점 대구점 건립 프로젝트 책임을 맡고 있는 현대백화점 김병우 상무.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서의 근무경험도 갖고 있는 그는 전국에서 수성구처럼 생활환경이 편리한 곳은 찾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편의시설의 집적도가 대단하다. 수성구는 '놀고 즐기고, 쉴 수 있는 곳'과 주거지 거리가 굉장히 가깝다 보니 앞마당에서 놀고 쏜살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격이다. 서울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럼 다른 지역은?
수성구 다음은 달서구라고 생각됐지만 달서구는 생각보다 백만장자 비율이 높지 않았다. 비록 단일 금융회사의 VIP 고객 주소 비율이라는 표본 한계가 있다. 어쨌든 달서구는 전체의 4.5%에 머물렀다. 달서구는 대구 최대 산업단지인 성서공단을 끼면서 제조업체 CEO가 많이 살 것으로 추측됐지만 CEO의 일터와 주거지가 반드시 인접하지는 않는 것으로 분석됐다.
수성구 다음으로 백만장자가 많은 곳은 전체의 9.5%를 점유한 중구다. 남산동과 대봉동에 각각 4%씩의 비율을 나타냈다. 남산동은 보성황실, 대봉동은 청운맨션 등의 아파트가 있는데 이곳에 나이가 지긋한 백만장자들이 많이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남구도 적지 않았다. 남구는 6%였는데 대명동과 봉덕동에 백만장자들이 많다. 과거 대구 최고의 주거지였던 앞산 밑에서 여전히 일부 백만장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동구는 4%, 북구는 2%다. 서구는 1%로, 백만장자를 찾기가 힘든 동네였다.
한 증권회사 직원은 "대구의 부자들은 전국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한다. 신흥부자보다 오래된 부자가 많다는 것이다. 수성구 중에도 비교적 오래된 아파트가 많은 수성동에 백만장자가 많고 여전히 중구와 남구에 백만장자가 많이 거주한다는 수치만 봐도 대구의 부자들은 나이가 많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했다.
◆백만장자, 그들의 생활은?
대구의 백만장자들은 과거 섬유 호황을 발판으로 자산을 일군 뒤 부동산을 취득, 재산이 늘어난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고령자가 대다수다. 주식투자 등 금융상품으로 재미를 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나이가 지긋한 백만장자들도 투자상품에 손을 대고 있다는 것. 은행·증권사 사람들의 말을 좀처럼 잘 믿지 않지만 한번 결정해 투자하면 느긋하게 기다리는 사람이 대다수라고 금융회사 관계자들은 전했다.
젊은 백만장자도 있는데 의사·변호사·교수 등 전문직이 대다수이고 제조업 등을 통해 백만장자가 된 '자수성가형'은 드물다는 것이 금융회사 사람들의 설명이다.
대구의 한 은행 PB센터 관계자는 "백만장자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것은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한번 앉으면 2, 3시간 동안 자기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백만장자들은 자신의 돈을 '노리고' 접근하는 것을 가장 싫어해 주변을 철저히 경계한다. 때문에 친구가 드물어지고 터놓고 얘기할 상대가 적어진다. 백만장자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들은 뜻밖에 외로운 사람들"이라고 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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