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때 귀가 도우미는 '뇌 내비게이션'

입력 2008-10-22 06:00:00

가와시마 류타·다이라 마사토 지음/고은진 옮김/현문미디어 펴냄

◇ 술에 취해도 어떻게 집에 돌아갈까?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을 마시고도 어떻게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이 책은 '뇌 내비게이션' 덕분이라고 답한다. 알코올 때문에 뇌 기능이 떨어져도 뇌는 경험을 바탕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경로를 불러내 술 취한 자신을 무사히 집으로 안내한다.

'뇌 내비게이션'은 뉴런(neuron)이라는 신경세포다. 이 신경세포는 늘 지나다니는 길의 풍경, 즉 시각정보를 바탕으로 '이번 네거리에서 우회전 혹은 좌회전' 이라고 지시를 내린다. 그러나 이 신경세포는 기억을 만들 수(축적할 수) 없기 때문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고도 우리는 어떻게 집으로 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즉 술에 취했어도 의식이 있으면 '뇌 내비게이션'이 작동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의식을 잃으면 자기 힘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기관인 해마는 술 때문에 기능이 약해지면 새로운 기억을 만들지 못한다. 어제 술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해마가 마비돼 더 이상 기억을 축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식이 있는 한 과거의 기억은 사용할 수 있다. 술에 취해 뇌 기능이 떨어져도 이전에 만들어진 기억은 남아있기 때문이다.

술은 기억능력에 상당한 문제를 일으킨다.

과도한 음주 때문에 기억장애가 일어나는 병으로 '코르사코프 증후군'이 있다. 건망증후군이라고도 하는데 알코올 의존증으로 비타민 B1이 결핍돼 발생하는 기능장애다. 지남력 장애(날짜, 시간, 장소 등을 파악하는 능력이 없음), 선행성 건망증(새로운 것을 기억하지 못함), 역행성 건망증(오래된 것을 기억하지 못함) 등도 있고 망상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상태에서도 단기기억, 즉 일시적인 기억을 만드는 기능은 있다. 그래서 술에 취한 상태에서도 상대방 이야기를 듣고, 중요한 단어를 기억하며 대화를 이어갈 수는 있다.

◇ 알코올은 뇌를 어떻게 취하게 할까?

왜 사람들은 술을 마실까? 간단히 말하자면 취하기 위해서다. 알코올이 뇌 기능을 마비시키는 방법은 교묘하다. 마취약처럼 순식간에 정신을 잃게 하지 않고, 환각상태에 빠트리지도 않는다. 신경독처럼 뇌의 주요기능과 호흡을 정지시킬 만큼 과격하지도 않다. 다만 서서히, 어둠이 내리듯 대뇌피질에 침투해 평소 엄격하게 자신을 억제하고 있는 전두전야의 기능을 완화시킨다.

취할수록 억제는 더욱 풀리고 사고력과 판단력은 둔해진다. 대신 뇌의 원시적인 활동인 감정만 표면적으로 드러나기 쉽다. 그래서 과장되게 웃거나 사소한 일에도 울고, 갑자기 화를 내는 등 감정적으로 행동한다.

술에 취하면 전두전야가 마비되면서 전두전야에 의해 억제됐던 변연계(본능이나 감정을 관장하는 뇌)의 활동이 상대적으로 활발해진다. 전두전야는 뇌의 맨 앞부분이며 뇌의 약 30%를 차지한다. 이 부분은 인간 외에 다른 동물은 별로 발달하지 않는 곳이다. 말하자면 사람을 사람답게 행동하게 하는 기능을 수행하는데 성격, 행동억제, 단기 기억생성, 행동순서 결정 등에 관여한다.

전두전야는 사람이 입밖에 내지 말아야 할 말이나 행동을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 예컨대 아기는 전두전야가 아직 발달되지 않아서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그래서 '만지고 싶은 것'을 잡는다. 그러나 자라면서 전두전야가 발달하고 '만지고 싶더라도 만지지 말아야 할 것'을 만지지 않는다. 그러나 술에 취하면 전두전야의 억제가 풀리면 '만지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흔히 '술에 취하면 본성이 나온다'는 말은 전두전야의 억제가 풀리면서 억눌러 두었던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말이다. 평소에 자신을 엄격하게 억제하는 사람들일수록 딴사람처럼 변하는 경우가 많다.

◇ 좋은 안주는 뇌에 도움될까?

지은이들은 마시는 술의 총량에 따라 전두전야가 쪼그라든다고 말한다. 정기적으로 금주한다고 해도 평생 마신 알코올 양에 따라 뇌가 위축된다는 것이다. 특히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근원인 전두전야의 세포부터 줄어든다.

뇌가 위축된다는 것은 노폐물로 분해돼 없어짐을 의미한다. 게다가 뇌세포는 몸의 다른 세포에 비해 재생이 무척 늦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20세부터 30세 사이에 완성된다. 그 후에도 나이를 먹으면 신경섬유의 양은 늘어난다. 뇌는 사용을 많이 할수록 뇌신경 세포들을 연결하는 신경섬유의 수, 신경섬유와 신경세포를 연결하는 시냅스의 수가 늘어난다. 즉 뇌가 얼마나 쓸모 있느냐는 세포의 수나 무게보다 신경섬유로 이루어진 네트워크의 질과 양에 달렸다. 머리의 좋고 나쁨은 얼마나 밀도 높은 네트워크를 만드는가에 달렸다는 것이다.

술이 뇌에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안주로 보완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의미없다. 인체구조상 음식안주는 뇌에 도달하지 못한다. 결국 술 마실 때 안주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게 최고다. 그러나 위나 간에 좋은 음식은 있으므로 이 점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지은이들은 의학박사이며 이 책은 술과 뇌, 술과 인간, 술과 문화에 관해 전반적으로 짚어보고 있다. 흥미롭게. 188쪽, 9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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