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 사망

입력 2008-10-22 06:00:00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이 1965년 10월 22일 사망했다. 그는 한국 최초의 미술유학생으로 일본에 가서 서양화를 공부했고 귀국후 서화협회를 창립했다.

1886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희동은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14세 때 한성법어학교에 들어가 프랑스어를 배웠다. 이를 계기로 궁내부 주사로 취직하여 궁중 내의 프랑스어 통역과 문서 번역을 했다. 이 무렵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사임하고 화가 안중식·조선직에게 동양화를 배웠다. 1909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

1915년 귀국, 1918년 서화협회를 창립하고 광복 후에는 대한미술협회장,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미술발전에 공헌했으나 1915년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조선물산공진회'에 '가야금 타는 미인'을 출품, 친일화가라는 오명에 시달렸다. 1920년대 중반부터는 다시 동양화로 전환, 서양화적 수법을 가미한 풍을 개척했다. 이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장, 대한민국예술원 종신회원, 대한민국예술원장으로 선출되었다. 대표작으로 '금강산진주담폭포' '탐승' 등이 있다.

▶1797년 세계 첫 낙하산 낙하시범 성공 ▶1975년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 사망

정보관리부 성일권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