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부모님과 팔공산행…고3 걱정 잊어

입력 2008-10-18 07:59:24

여느 계절과는 달리 가을은 사뭇 신비롭게 다가온다. 약 5년 전 지금과 같이 나뭇잎이 옷을 갈아입는 어느 가을이었다. 난 그때 모두가 한번쯤 거쳐가야 하는 고등학교 3학년, 이미 수능은 코앞에 다가오고, 뚜렷한 꿈이 없었는지라 모든 것에 자신을 잃어가고 오직 대학에 가야 한다는 압박감과 많은 생각에 시달릴 때였다.

어느 일요일 오후에 엄마가 아빠랑 바람도 쐬고 단풍을 보러 팔공산에 놀러 가자고 하셨다. 고3에게는 더욱 금쪽같은 휴일이라 쉬고 싶었고, 그날따라 몸이 가라앉는 듯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엄마의 강력한 권유로 가기 싫은 마음을 버리고 팔공산에 가게 되었다. 차를 타고 가는데 너무나 예쁘게 새초롬히 옷을 차려 입었다. 불긋불긋, 노릇노릇 빛깔들로 잎을 물들이며 수수한 모습을 보여주던 나무들의 화려한 변신이 신기하고 아름다워서 아빠에게 길가에 차를 세우자고 했다. 내려서 나뭇잎을 만지니까 꿀꿀했던 마음도 싹 달아나 버렸다. 제각기 아름다움을 뽐내면서도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어우러지는 나뭇잎을 책갈피로 만들어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어 나뭇잎을 따서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북적북적 사람들로 붐볐고 곧 칼국수와 파전, 두부 그리고 구수한 막걸리가 나왔다. 손 큰 아주머니의 푸짐하던 요리가 얼마나 맛있던지!! 그날 먹었던 음식들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음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행복했다.

아빠, 엄마, 나 이렇게 조촐한 세 식구가 한집에 살지만 너무 바빠서 함께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 시간조차 없이 살았다. 그 하루는 내게 특별한 가을 여행이었다. 남들은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가족이 함께 앉아서 오순도순 그냥 이야기한다는 그 소소한 평범함의 순간이 잠시나마 걱정을 날려버리고, 위로를 해주는 것 같았다. 하루였지만 가까이 있다고 생각해 당연하게 여기고 지나쳤던 내게 가족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었다.

또다시 가을이 오고 있다. 5년 전과 같이 인생 진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끝자락에 서 있다. 푸른 나뭇잎이 붉게, 노랗게 물들어 성숙해져 가는 이 가을에 가족과 잠시나마 가을 여행을 떠나 엄마, 아빠 마음이 내 마음에 물들여져 행복해지는 마법같이 변하게 할 이 가을을 꿈꿔본다.

이순향(대구 동구 입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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