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날고 싶다…탐험가 허영호

입력 2008-10-18 06:00:00

탐험가 허영호(54). 히말라야 8천m급 14좌 등정, 인류 최초로 세계 3극점(남·북극점, 에베레스트)과 7대륙 최고봉에 오른 사나이. 지금은 하늘을 나는 모험가. 그에 대한 설명은 괜한 사족인 듯싶다. 엄홍길과 박영석 대장이 등장하기 전까지 대한민국 대표 산악인은 그였다. 인간이 갈 수 있는 지구상의 끝점들을 모두 밟았던 그는 요즘 하늘을 향해 멈춤 없이 도전 중이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강동구 한 오피스텔에서 그를 만났다. 작은 사무실은 꽤 어수선했다. 빽빽하게 꽂힌 책들과 상자들, 스킨 스쿠버 다이빙 장비, 등산 장비 등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자연을 상대로 한 스포츠는 다 좋아한다는 그는 자신의 탐험사를 마치 '남 얘기하듯' 편안하게 들려줬다. "굉장히 쉽게 성공한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뭐 저는 다 갔다왔으니까요. 그래도 아직 도전할 게 많아요. 새로운 걸 계속 시도하니까 재밌죠." 그의 느긋함은 '해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 바로 그것이었다.

◆탐험가, 하늘을 날다

-지난달 26일에 사상 최초로 초경량 비행기를 이용해 독도 선회 비행과 울릉도 이·착륙을 하셨는데요. 어땠어요?

"당일 아침에 출발하는데 울릉도에 강풍주의보가 발령됐어요. 비행 장면 촬영을 위해 따라오기로 했던 4인승 세스나 비행기도 포기를 했고요. 한참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해보자'고 나섰죠. 서울 광나루축구장을 이륙해서 강원도 횡성을 지나는데 구름이 굉장히 짙더군요. 구름 속을 2분쯤 날았는데 아무것도 안 보이고 엄청나게 불안하더라고. 초경량 비행기가 지상에서 1천400m 높이로 나는데 항로에 있는 가리왕산(해발 1천561m)을 못 넘어요. 구름 속을 나와서 다시 크게 선회하고, 바짝 긴장하면서 삼척까지 오니까 시야가 트였어요. 한참을 날다 보니 울릉도가 왼쪽에 딱 보이더군요. 독도를 20여분간 선회한 뒤에 조종간과 싸우면서 울릉도에 내렸죠. 뿌듯했어요."

-고산 등반에서 비행기 조종으로 눈을 돌린 이유가 뭔가요?

"모험을 계속하기 위해서죠. 어렸을 때 꿈이 조종사였어요. 또 사상 처음으로 7대륙 최고봉과 남·북극 도보 탐험, 히말라야 8천m급 14좌 등반을 모두 성공하고 나니까 목표가 없어졌잖아요. 그래서 큰 도전을 다 해봤으니 어렸을 때 꿈을 실천해봐야겠다고 결심했죠. 아직 비행이 고산 등정만큼 힘들지는 않아요. 하지만 세계 일주는 에베레스트보다 힘들 것 같아요. 고산 등반은 자신을 믿고 자연에 순응하면서 올라가면 되는데 비행기는 기계장치가 변수가 되니까요."

-초경량 비행기로 한계에 도전하는 게 두렵지는 않습니까?

"두렵죠. 하지만 두려움보다는 하고 싶다는 욕심과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더 커요. 7시간에 걸쳐 1천100㎞ 비행을 하려면 연료 준비가 어렵고 수평 이동에 대한 판단력도 중요하지만 저는 비행기의 성능이나 비행 속도로는 다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대한민국의 동서남북 끝을 다 가볼 겁니다. 남쪽은 이어도, 서쪽은 가거도, 북쪽은 평양을 갈 겁니다. 특히 평양까지 날아가는 일은 북한과 협의 중인데 쉽지가 않네요."

-비행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뭔가요?

"행정이 어렵고 복잡합니다. 독도 비행의 경우 비행시간은 7시간인데 허가를 받는 데만 20일이 걸렸어요. 항공 관계자들은 초경량 비행기가 비행장치이지 정식 비행기가 아니라고 말해요. 그래서 김포공항, 대구공항, 서울공항 등 공항에는 못 들어갑니다. 지난번에 독도 비행을 갈 때도 지방항공청에 허가를 받기 위해서 행정기관 4곳에서 동의를 받아야 했어요."

-비행 도중에 배가 아프면 어떻게 합니까?

"땅으로 내려와야 해요. 그래서 보통 2, 3일 전부터 식사와 물 조절을 해요. 올해 초 여주~제주도 왕복에 도전할 때도 소변 처리가 걱정이 돼서 기저귀를 3개나 가져갔어요. 다행히 쓰지는 않았죠. 또 사고에 대비해서 물이 안 들어오는 '드라이 수트'와 비상식량, 구조 요청용 위성 송신기, 거울 등 최소한 3일간 살아남을 수 있는 준비를 합니다."

◆밤이 무섭던 아이, 세계 최고의 탐험가가 되다

-어릴 때부터 탐험이나 등산에 관심이 많았나요?

"등산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미술 시간에도 등산하는 장면만 그렸고, 친구들과 산에서 토끼 잡는 게 엄청나게 재밌더라고요. 제가 어릴 적에 몸이 허약했어요. 초등학교 때만 해도 밤만 되면 매일 귀신에게 가위를 눌렸어요. 결혼 전까지 54㎏을 넘어본 적이 없어서 별명이 '갈비씨'였어요."

-고산 등반에 본격적으로 나선 게 언제였습니까?

"1970년대 초부터 산은 많이 다녔어요. 달력에 빨간 글씨만 되면 무조건 산으로 도망갔으니까. 고산은 1982년 5월 20일 히말라야 마카루 원정이 시작이었죠. 혼자 엄청나게 훈련을 해서 선발대에 뽑혔어요. 합숙 훈련 전부터 심박 수를 60~65 정도(일반인 60~80. 심박수가 낮을수록 고산 지대 적응이 쉽다)로 낮췄을 정도니까요. 제가 팔팔하게 잘 움직이니까 1차 공격조로 정상에 도전했어요. 그때만 해도 다들 산소마스크를 벗으면 죽는다고 그랬어요. 1977년 고상돈 선배가 처음 에베레스트를 올랐을 때 사진을 보면 산소마스크를 벗고 있는 모습이 하나도 없거든요. 그런데 저는 정상에서 1시간이나 마스크를 벗고 있어도 괜찮더라고요. '야, 이게 나랑 체질에 맞는구나' 그랬죠."

-지금까지 성공에서 운이 얼마나 작용했을까요?

"지금까지 등반과 탐험을 하면서 다치거나 세상을 떠난 동료가 한명도 없어요. 그건 운이 좋았다고 봐야죠. 그런데 날씨 변화나 눈사태는 운이 아녜요. 그곳은 항상 날씨가 나쁘잖아요. 저는 탐험에 나서면 엄청난 준비와 관리를 합니다. 지금도 달리기와 등산, 노르딕 워킹 등으로 체력 관리를 합니다. 등반 탐험은 준비된 모험을 하는 겁니다. 준비가 미흡하면 큰 사고나 실패의 가능성이 커집니다. 분석과 통계로 철저하게 준비하고 가는 거예요."

-가장 힘들었던 탐험은 언제였습니까?

"1995년 북극 횡단이었어요. 99일 만에 러시아에서 캐나다까지 북극점 도보탐험에 성공했는데 지금까지 북극 탐험 역사상 최고 기록이에요. 처음에는 영하 50℃에 200㎏의 짐을 지고 1천800㎞를 걸어간다는 게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그래도 해보고 싶다는 욕심에 일을 저질렀죠. 하루에 12시간씩 얼음바다를 걸어가는데 엄청난 고통이 따르죠. 북극곰과도 세번이나 마주쳤어요. 3개월을 걸었는데 나침반을 대고 딱 보니까 까만 점이 보여요. '저거 육지 맞지?' 희망을 보니까 그 다음부턴 펄펄 날았죠."

◆탐험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가 아쉽다

-산악인들은 '최초' '최고'라는 데 굉장히 예민한 것 같은데요. 2006년 박영석 대장의 '에베레스트 최초 횡단' 논란도 그렇잖아요.(2006년 박영석 대장이 세계 최초로 단일팀 에베레스트 횡단에 성공했다고 발표하자, 허영호 대장은 이미 1993년 자신을 포함한 히말라얀 클럽이 횡단에 성공했다고 반박한 바 있다.)

"제가 1993년 3월 6일 만에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넘어왔어요. 제가 중국쪽 루트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는데 올라온 길이 험악해요. 그래서 네팔 쪽으로 내려갔어요. 그런데 저희가 중국 허가만 받고, 네팔관광성의 허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이 아니라는 거예요. 허가를 안 받았다고 등반 사실을 인정 못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최고' '최초'에 대한 부작용이 있어요. 작년에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가지도 않았으면서 셰르파에게 돈을 주고 등정했다고 거짓말을 한 원정대도 있었잖아요. 다 명예나 욕심 때문이에요."

-국내 산악인이나 탐험가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뭡니까?

"생계죠. 산악인들은 어렵고 궁핍해요. 등반 도중에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잃은 후배들은 고산 등반도 못하고 장애 때문에 일을 하기도 힘들어요. 탐험에 대한 인식이 낮고 도전 인구도 적어서 후원을 받기가 쉽지 않아요.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드냐'는 식이죠. 외국에서는 에베레스트나 남·북극을 다녀왔다고 하면 놀라워하고, 굉장히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이 이룬 최고의 성과에 대해 존중하거나 박수치는 문화가 굉장히 약해요."

◆내 꿈은 세계 일주

-탐험을 다니는 아버지에게 가족들의 불만은 없습니까?

"애들이 일기장에 '아빠 오기만 하면 책상에 꽁꽁 묶어놓는다'고 썼을 정도였어요.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함께 해외로 많이 다녔어요. 주머니에 돈만 생기면 애들 학교는 결석시키고 끌고 다녔어요. 엘브루스, 로체, 킬리만자로, 케냐, 탄자니아, 에베레스트, 몽블랑 등 안 가본 곳이 없어요. 아들 재석이가 고교 졸업할 때 세보니 13개국을 다녔더라고요. 제가 남겨준 건 그것밖에 없어요. 10년 전에는 독도에 재석이와 둘이 가서 하룻밤 자고 오기도 했고요. 2003년 알프스 몽블랑을 재석이와 함께 등정하고 내려오자마자 유럽 배낭여행을 보내버렸죠. 지금은 잘 투자했다는 생각을 해요."

-초경량 비행기로 세계 일주하는 게 꿈이라던데 어디까지 진행이 됐습니까?

"아직 스폰서가 결정 안 됐어요. 1년 6개월은 걸리는데다 5억원 정도 들거든요. 경제 상황도 좋지 않고, 꽤 매력적인 탐험인데도 지원하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네요. 제가 800~1천㎞ 단위로 이·착륙을 하고, 경유하는 지역의 인문지리를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인터넷에 올리면 반응이 좋을 것 같은데 잘 안 되네요."

-10년 뒤에는 무얼 하고 있을까요?

"청소년 테마파크를 할 겁니다. 제 인생의 목적인 청소년들이 새로운 아웃도어 체험을 할 수 있는 연수원을 짓는 겁니다. 아이들이 직접 체험을 하면서 꿈과 도전정신을 키우고 동기부여도 해주는 거죠. 그게 제 인생의 마지막 목표입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허영호는?

1954년 충북 제천 출생. 설명이 필요 없는 대한민국 대표 탐험가다. 1982년 한국 최초로 히말라야 마카루(8천481m) 등정을 시작으로 1983년 히말라야 마나슬루 무산소 단독등정, 1987년 국내 최초 에베레스트 동계 등정, 8천m급 14좌 완등, 남·북극점 정복, 북극해 횡단 등에 성공했다. 1995년 세계 3극지점과 7대륙 최고봉에 모두 오른 인류 최초의 탐험가가 됐다. 이후 초경량 비행기에 눈을 돌려 지난 4월 국내 최초로 여주~제주 1천100㎞ 구간을 왕복 비행했고, 지난달 26일에는 독도 상공을 선회 비행하기도 했다. 올해 말까지 가거도, 이어도, 독도, 평양 등 대한민국 4꼭짓점을 초경량 비행기로 날아가는 것이 목표. 최종 목표는 세계 일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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