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채보상운동 기념관 건립의 의미

입력 2008-10-16 06:00:00

대구경북의 자랑스러운 과거를 만드는 일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국채보상운동 기념관 건립이 그것. 국채보상운동 기념관을 짓는 것은 말할 나위 없이 국채보상운동이라는 지역의 값진 역사적 유산을 자랑스럽게 기억하자는 것이지만, 이 운동을 기억하는 것은 그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국채보상운동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은 대구경북의 탈근대적 미래를 꿈꾸는 일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대구경북은 현재 모든 주민이 공감하는 공유된 비전(shared vision)을 갖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대구경북에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상실감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대구경북은 언제부터인가 근대화의 덫에 갇혀서 이를 돌파할 새로운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대구경북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박정희식 근대화 방식을 과감하게 뛰어넘는 내발적 발전 전략의 모색이다. 탈근대적 지역 발전 모델을 찾는 일도 결국 이와 다름 아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구한말 대구경북에서 비롯됐다. 국채보상운동에는 돈 많은 지역의 상공인으로부터 저잣거리의 거지에 이르기까지, 양반집 마나님에서 기방의 기생까지 모두가 함께 참가했다. 서구 근대의 시민계급이 제한된 사회계층으로 구성된 데 반해 국채보상운동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모든 계층이 그야말로 대동(大同)의 정신을 발휘한 점에서 그 옛날 일임에도 이미 충분히 탈근대적이었다. 100년 전쯤의 과거에 대구경북에서 여성이 그렇게 앞장서서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사회적 대의에 동참하고 나섰다는 사실을 알면, 누가 대구경북을 보수 골통 지역이라고 조롱할 수 있을까?

국채보상운동의 탈근대성은 그것이 가지는 지역 중심성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국 사회의 근대화는 지역의 주변성을 고착시키는 과정이었다. 대구경북이 주민 스스로 주체적으로 공유된 비전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은 중앙 의존적 심상(心象) 지리를 가장 빨리 받아들이고 또한 가장 깊숙이 내면화시켰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대구경북이 중앙 의존성을 벗어나 지역 중심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대구경북이 탈근대적 지역 발전 모델의 원형을 국채보상운동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대구경북은 지리적으로 새로운 정보의 발신 주체가 되었고, 또 처음부터 끝까지 그 중심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대구경북의 미래 지향점과 정확하게 겹친다.

국채보상운동을 통해 우리는 일본이 식민지 침략을 노골화하는 과정에서 국가가 진 채무를 국민이 나서 술담배를 끊어서라도 갚겠다는 채무상환 도덕의 전형을 발견한다. 1999년 제2의 국채보상운동을 표방한 대구라운드는 글로벌 포럼 개최를 통해 일찍이 동아시아 외환위기 과정에서 드러난 채권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 문제를 문제 삼고 국제금융질서의 개혁을 주장한 바 있다.

지금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본질은 동아시아 금융위기를 야기한 채권 금융기관의 부실한 위험관리와 탐욕이 동아시아 외환위기 해결 과정에서 결국 개혁되지 못하고 마침내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의 금융시장에 부메랑 효과로 나타난 것이다. 대구라운드의 주장이 최근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그 정당성이 입증되고 있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대구라운드가 계승하고자 한 국채보상운동은 세계 금융자본주의의 위험성에 대하여 이미 매우 전향적이고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점에서 국채보상운동의 또 다른 탈근대적 지향성이 발견된다. 세계화의 위험에 직면하여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궁극적으로 지역공동체의 회복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각성도 그래서 가능한 것이다.

대구경북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역사적 상상력은 자랑스러운 과거의 기억을 통해 재구성되어 발휘될 수밖에 없다. 국채보상운동 기념관 건립은 이러한 점에서 대구경북의 미래를 새롭게 창조하는 일이다.

김영철 (계명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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