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청도의 가을

입력 2008-10-16 06:00:00

가을이 무르익는다. 눈부시게 푸른 하늘과 향기로운 바람에 마냥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럴 땐 어디론가 훌쩍 떠나보자. 이 즈음 내 고장 들녘은 바라보기만 해도 황홀하다. 가을이 절정을 이룰 앞으로 3주. 가까운 교외로 산책을 다녀오면 어떨까. 반나절이면 넉넉한 대구권 가을 드라이브 코스를 소개한다.

●가창면 용계리~헐티재

신천 좌안도로를 따라 가창 용계리에 접어들면 팔조령으로 향하는 30번지방도(직진)와 헐티재 방면의 902번 우회전 도로를 만난다. 가창댐을 끼고 노루가 숨을 헐떡이며 넘나들었다는 헐티재 쪽으로 차를 돌리면 완연한 가을 향기에 머리가 맑아진다. 가을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가창댐을 따라 황금빛 나락이 춤을 추고, 이제 막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은 나무들이 정겹다.

가창댐 위쪽의 양지마을에 문을 연 동제미술전시관(053-767-7587)은 가창댐과 최정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할 수 있는 곳. 두 개의 전시관 건물 모두 한쪽 면이 투명한 통유리를 달아 전시관 내 미술작품과 바깥 경치를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다.

동제미술관에서 헐티재 쪽으로 5㎞쯤 더 올라가 정대리 마을회관을 지나면 대구미술광장(053-768-8121)이 자리 하고 있다. 옛 가창초교 정대분교 터에 자리 잡은 이곳은 운동장 한가득 펼쳐진 조각품이 이색적으로 다가오는 미술관. 8년전 이맘 때 대구미협 회원들이 창작활동을 위해 만든 곳으로, 다양한 전시활동과 미술교육이 함께 이뤄지고 있다.

●헐티재

대구와 청도의 경계를 이루는 높이 500m 남짓의 헐티재에 올라 비슬산을 굽어본 뒤 청도 각북으로 들어서면 천년 역사를 간직한 아담한 절집 '용천사'가 반갑다. 맑고 풍부한 석간수가 끊임없이 솟구쳐 '용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절 한가운데 자리한 약수터에서 시원한 물 한잔 들이키며 잠시 쉬어가기에 그만이다. 주차장 옆에 장을 펼친 시골 할매들은 바구니 한가득 석류를 담아 놓고 있다. 푸르름으로 눈부신 파란 하늘 아래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붉은 석류알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모습은 가을에만 볼 수 있는 예술 작품 같다.

●각북'풍각'이서면

용천사를 지나면 비슬산 테마 카페촌이다. 저마다 특색을 자랑하는 테마 찻집과 음식점을 천천히 둘러보며 고갯길을 내려오면 '감천국'이라는 말이 절로 실감난다. 길가에 늘어선 농가의 지붕과 뒤뜰, 돌담 옆마다 어김없이 감나무가 서있다. 눈길 닿는 곳마다 수십, 수백 그루의 감나무 과수원이 펼쳐지고, 가파른 산비탈에도 마치 융단을 깔아 놓은 듯 한 주홍빛 감들이 한폭의 그림 같다.

각북 덕촌리에 잠시 차를 세우고 감나무 앞에 섰다. 예로부터 청도의 감은 유달리 동글납작해 소반 반(盤)자를 써 반시(盤枾)라 불렀다. 마침 인심 좋은 감나무 주인 부부가 직접 딴 감을 건넨다. 씨 없는 홍시가 입에서 살살 녹는 기분이 그만이다.

●화양 유등리

각북'풍각'이서면을 따라 감나무 풍광에 취하다 보니 어느새 화양읍 유등리다. 이곳에 들어서면 주변 어디에서나 감물 염색 농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감물이 들어 농가 마당 한가득 펄럭이고 있는 천들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모습은 가을에만 만끽할 수 있는 또 다른 풍경이다.

감물은 풋감으로 들인다. 예전엔 일일이 손으로 으깨 주머니에 넣고 물을 짜냈지만 이젠 기계가 그 일을 대신한다. 착즙기에서 감즙을 따내 커다란 통에 담은 뒤 시간을 두고 발효시키는 것. 감물을 들인 천에 코를 가까이 대면 시큼한 발효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청도반시는 씨가 없고 즙이 많아 감염색에 적합하고, 감염색 제품은 항균성, 소취성이 뛰어나 아토피 등 피부질환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연염색공방 '가시버시'(054-373-0515)의 황금자(59) 침장은 "감물을 들인 천들은 원단 종류와 염색 횟수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며 "가을철엔 감물 염색 체험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