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3년째 암 투병…매일 차량운전 자원봉사

입력 2008-10-15 08:32:44

▲ 북구밝은지역아동센터에서 8개월째 차량운전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장판수씨는
▲ 북구밝은지역아동센터에서 8개월째 차량운전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장판수씨는 "아이들이 북적거리며 노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누구도 그를 암환자라고 생각지 않았다. 윤정현 인턴기자

"침산초등학교 앞으로 오시면 제가 운전하는 차가 보일 겁니다. 아이들을 데려다줘야 하거든요."

암환자라면 으레 침상에 누워 투병중인 모습을 상상할 것이지만 이 아저씨는 달랐다. 운전까지 한다니 사람을 잘못 찾았나 싶기도 했다. 또 한 번의 입원을 앞두고 있는 장판수(53)씨는 분명 암환자였다. 남루한 옷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오른쪽 어깨에 혹이 있어 왼손으로만 기어를 넣고 운전을 하는 장씨. 그래도 8개월째 운전대를 잡고 있다고 했다. 더 놀라운 것은 무엇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자원봉사'라는 것이었다. 제 수술비도 없어 허덕이면서 자원봉사라니.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은 가정의 아이들을 지역아동센터로 실어나르는 게 그의 유일한 일이었다. 걔중에는 장씨의 아들 대용(12)이도 함께있었다.

평생 운전을 밥벌이로 삼아 살아온 장씨는 2006년 간암 진단을 받고 이듬해 수술했지만 결국 폐와 다른 장기로 전이됐다고 했다. 그의 목 아래에는 야구공보다 훨씬 큰 크기의 혹이 있었다. 종양이라고 했다. 암세포가 자라고 전이돼 그의 배는 딱딱했다. 남루한 옷차림을 탓할 마음은 없었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오른쪽 어깨의 혹도 암세포라고 했다. 역시 딱딱했다.

"건강보험적용이라도 되면 좋겠구먼… 너무 비싼 병을 얻었어요."

16일에도 입원을 앞두고 있는 장씨는 50일에 한 번꼴로 병원에 가야한다고 했다. 이번에도 열흘 정도 입원할 것으로 예상했다. 암세포의 확산을 억제하는 주사가 한 번에 30만원이 든다고 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한 달에 85만원씩 정부의 생계비 지원을 받고 있지만 한 번 입원할 때마다 들어가는 돈은 상상을 초월했다. 6월에 23일 동안 입원하면서 460만원, 8월에는 13일 입원하면서 160만원, 지난달에는 고작 사흘을 병원에 누웠지만 94만원이나 나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가 다니는 서문로교회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북구청에서 긴급구호자금 300만원을 내주기도 했다. 앞으로도 이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가까운 친인척이라고는 담을 쌓고 지내는 여동생이 있지만 지난주 찾았다 보기 좋게 퇴짜만 맞고 왔단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반드시 더 살아야하고, 그래서 돈을 빌리러 다녔다는 장씨. 나이 사십에 얻은 아이들. 대현(14), 대용이는 '참하게'라는 말밖에 적절한 말이 없을 정도로 잘 자라줬다.

1994년 결혼 후 2003년 부인과 이혼하기까지 그에게는 아이들이 희망이고 살아갈 이유였다. 병원에서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이미 여러 차례 귀띔해둔 터. 하지만 정작 장씨는 "아픈 곳이 없는데 마음의 준비를 어떻게 하란 말이냐"며 웃었다.

새벽녘 벌떡 깨 아이들 얼굴을 바라보는 장씨. 형제가 부둥켜안고 자는 모습을 보면 한숨이 앞선다고 했다. 아빠가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걸 아이들은 아직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때때로 아이들의 낯빛이 이상할 때면 장씨는 묻는다.

"'고민 있냐'고 물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답해요. 제가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걸 직감한 듯한 얼굴빛이지만 말은 막상 안하더군요."

오전 7시에 일어나 아이들 밥을 해먹이고 낮 12시를 넘어서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노는 걸 넋을 놓고 구경하는 장씨. 아이들을 봐야 살려는 의지가 더 강해진다고 했다. 오후 3시면 아들 대용이와 아이들을 지역아동센터로 실어나른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자원봉사까지 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하자 "30분이면 일이 끝나는데 일이라고 할 것도 없다"며 손사래 치는 장씨는 두 아이가 고교생이 될 때까지만이라도 이렇게 활동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나이 칠십 먹은 사람도 4년째 투병 중이던데요. 나이 오십줄밖에 안된 저는 더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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