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프리즘] '환율 급등' 국내 미술계에도 직격탄

입력 2008-10-13 06:00:00

환율과 미술시장

#두달 전 일본에서 1천만원대의 도자기를 구입한 김모(54)씨. 가격이 부담스러워 할부로 샀더니 당시 1천120만원이던 도자기가 지금은 환율상승으로 가격이 1천350만원이 돼 그 부담을 고스란히 물고 있다. 김씨에 따르면 지난해 초만 해도 도쿄 아오야마 골동거리에 한국인 미술딜러들이 득시글댔으나 지금은 적막강산이라고 전했다.

#지난 8일 홍콩에서 첫 미술품 경매를 마친 서울옥션은 65%가 넘는 낙찰률을 보였으나 그림을 예약한 미국의 컬렉터들이 경매 당일 대거 불참하는 바람에 출품자들을 당황하게 했다는 소식. 이달초 열린 중국 미술품을 취급한 홍콩소더비 낙찰률이 35%에 그쳐 아시아 미술시장의 위기감을 높여주었다.

◆환율의 영향

지난해 단군 이래 최고의 호황을 이룬 국내 미술시장은 올해 들어 국내 경기의 침체와 미술품 양도소득세 적용 등으로 미술시장이 급랭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미국 금융시장의 혼란과 환율상승은 미술시장 규모가 얼마되지 않는 국내 미술계에 직격탄을 날렸다.

환율상승 영향은 미술옥션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지난 3월에 열린 서울옥션(낙찰률 63.2%, 낙찰 총액 149억5천여만원)과 K옥션(낙찰률 80%, 낙찰금액 93억7천만원) M옥션(낙찰률 61.6%, 13억9천여만원)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지난해 낙찰률 90%를 넘어서면서 컬렉터들의 관심을 모았던 옥션에 찬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열린 국내최고의 미술품 판매시장인 '2008KIAF'에서도 판매총액이 지난해 175억원에 비해 20%가량 줄었다. 지난해 과열된 미술경기에 따라 화랑들이 부스를 배 이상 늘린 것을 감안하면 이 금액은 엄청나게 줄어든 수치다. 한점도 판매하지 못한 화랑들이 많을 뿐 아니라 일부 화랑에서는 부스 사용료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특히 미술시장이 국제화되어가고 있는 한국시장에서 미국 경제의 혼란은 바로 한국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를 정점으로 국내 미술시장에는 미국의 앤디워홀과 데미안 호스트, 일본의 야요이 쿠사마, 프랑스의 로베르또 꽁바스, 중국의 장샤우강 위에민준 등 세계미술옥션 스타들의 작품들이 상당수 국내 컬렉터들에 의해 국내로 유입되었다. 환율상승으로 더 이상 외국 유명작가들의 작품 유입은 힘들어지는 반면 환차익을 노린 국내 소장가들의 외국 작품 되팔기가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세계 경제침체로 세계시장에서 고가로 거래됐던 국내 작고·원로급 작가들의 작품가격 하락이 눈에 띄고 있다. 해외옥션에서 이들 작품의 유찰이 많아지자 가격 폭락이 두드러지고 있다. 실제로 이우환씨의 경우 30호 작품이 지난해 2억원이 넘었으나 최근에는 1억원 이하로 떨어졌다. 그의 작품은 이달말 열리는 M옥션에는 한점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아시아에도…

현재 싱가포르 아트페어에 참석하고 있는 김태수 맥향화랑 대표는 "아시아에서 열리는 미술시장이 완전히 가라앉고 있다"며 현재 분위기를 전했다. 미국 중국 유럽의 큰손들의 관심이 줄어들면서 중국 작가 작품들의 출품수가 대폭 줄었다. 김태수씨는 이런 분위기는 내년이면 더욱 더 심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달 열린 '2008KIAF'에서도 중국 작가들의 출품이 대폭 줄었다.

지난 홍콩옥션에도 미국 컬렉터들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한 한 참가자는 "미국의 현 경제상황이 이어질 경우 아시아의 미술시장은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고 점쳤다. 실제로 지난 4일 소더비 경매 낙찰률은 60%에 그쳤고, 5일 이어진 소더비의 20세기 중국 미술품 경매는 낙찰률이 35%로 더욱 떨어졌다.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다

한 미술컬렉터는 "요즈음 화랑에 가기가 겁난다. 오전에 가기가 민망해 오후에 가는데 이마저도 첫 방문객인 경우가 많다"며 찬바람 부는 미술시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미술시장의 이 같은 침체는 과연 나쁘기만 할까?

김태곤 대백갤러리 큐레이터는 "환율상승이 미술시장에서 꼭 악재만은 아닐 것 같다. 단지 유동성 자금 확보라는 경제적 문제로 인해 미술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이 상태가 길게 가지는 않을것"이라고 했다. 투자자들의 위축이 있을 수 있지만 문화적 인프라가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고 미술품 가격안정으로 실소유 미술품 구입자에게는 호기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남춘모 서양화가 역시 "미술시장의 침체가 반드시 현재 미술시장에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미술시장의 거품이 빠지면서 오히려 작가나 화랑 컬렉터 층을 두텁게 만들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기회에 미술품의 투기세력화도 정리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한 컬렉터는 최근 삼성 리움미술관에서 개성적인 인물화로 세계시장에서 뜨고 있는 뉴욕 작가 '조지콘도' 작품 9점을 구입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모든 화랑들이 이를 구입하느라 혈안이 되고 컬렉터들도 앞다투어 구입했다는 것이다. 인기있다 하면 무조건 사고 보자는 컬렉터와 화랑의 심리도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지나치게 원로급 작가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국내 중·청년 작가에 투자해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프로모션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의 홍콩옥션에서 보듯이 국내 작고·원로급 작가 작품들이 대거 유찰된 반면 신진작가들의 낙찰률이 컸다는 점을 들어 국내 신진작가의 발굴에 적극 나설 때라는 것이다.

김순재기자 sj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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