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최진실법

입력 2008-10-09 10:52:02

1994년 7월 29일. 미국 뉴저지주 해밀턴의 7세 소녀 메건 칸카는 강아지를 주겠다는 이웃 아저씨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같은 블록에 살고 있던 남자에게 유괴된 메건은 결국 끔찍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이 남자는 이미 두 차례나 아동 성폭행 범행을 저지른 전력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성범죄자가 이웃에 있다는 사실을 알 권리에 대한 요구가 잇따랐고, 그래서 만들어진 법이 소녀의 이름을 딴 메건법(Megan's Law)이다.

미국에는 실명으로 된 법이 많다. 플로리다주의 제시카 런스포드법은 12세 이하의 아동에게 외설적인 행위를 한 성인에게 최하 25년의 형량을 선고토록 규정한 법이다. 2005년 성폭행당한 뒤 암매장된 당시 9세의 제시카 런스포드의 이름을 땄다. 아담 월쉬법, 제이콥 웨터링법, 팸 리크너법도 모두 희생자의 실명으로 명명된 법이다.

어린이 유괴'납치사건에 대한 비상경보체제인 '앰버 경보'도 1996년 텍사스에서 납치'살해된 당시 9세 소녀 앰버 해거먼의 이름을 땄다.

그러나 이름에 대한 동서양의 태도는 판이하다. 우리나라는 고인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됐다.

임금의 이름이나, 선왕의 생전 이름을 종이에 쓰거나 부르면 犯諱(범휘)라고 해 죄로 다스렸고, 또 조상 중 높은 이의 사후에는 諱字(휘자)라고 해서 直書(직서)하거나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이름은 당사자뿐 아니라 가문의 명예였고, 이름을 더럽히는 것은 개인의 일이 아니라 가문의 수치로 여겼다.

올해 초 정부는 아동 성폭행 범인에 대한 법정형량을 올리는 것을 골자로 한 '성폭력 범죄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손질하면서 '혜진예슬법'이라고 이름 붙였다가, 부모들의 반대에 부닥쳐 결국 실명 표현이 빠졌다.

이번에는 '최진실법'이 그 짝이 났다. 고 최진실 씨 소속사는 "법 때문에 고인의 이름이 계속 거론되면 유가족의 아픔이 더욱 크다"며 실명 사용중지를 요청했다. 급기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실명이 법령 명칭에 사용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물러서 일단락되었다.

이참에 사이버문화를 재정비하고, 악플을 근절하려던 정부와 한나라당은 한국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섣불리 미국식을 흉내내 고인의 명예에 악플 하나를 더할 뻔한 것이다.

김중기 문화팀장 filmtong@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