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 투병 유영일군
"중3 때였어요. 감기인 줄 알았는데 속이 메슥거리고 황달이 나타나더군요. 병원에 가니 간경화라고 했어요. 그런데 검사를 할수록 하나씩 문제가 튀어나오더군요. 첫번째는 간경화, 두번째는 만성 고혈압, 마지막에는 콩팥 기능 이상이라고…. 어휴, 콩팥 하나에 돈이 얼만데 아까워 죽겠어요."
건강에 이상이 생겨 병원을 찾고도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사람이 다 있을까. 까무잡잡한 낯빛이었지만 아픈 기색이라고는 전혀 없는 까까머리의 고3 수험생 유영일(19)군은 "콩팥 하나에 이상이 생겨 장기 매매도 못한다"며 우스갯소리를 늘어놓았다. 개그 MC가 되고 싶었다는 유군의 입심은 아픈 중에도 살아 있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MC 관련 학과로 진학하려 했다는 유군의 '끼'는 사그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여기 이렇게 구슬처럼 보이는 게 결절입니다. 그 옆에 둥글고 5㎝ 정도 크기로 보이는 게 암세포로 추정되는 것입니다. 현재 상태로는 간경화가 간암으로 진행되는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간의 대부분이 이런 결절 형태인데 이걸 다 잘라내버리면 남아있는 간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경북대병원 탁원영 교수는 간 모형을 짚어가며 상세히 설명했다. 특수촬영을 통해 나타난 유군의 간은 작은 구슬 알갱이가 다닥다닥 붙은 것처럼 보였다. 매끄럽고 붉어야 정상인 간이 석류알처럼 나뉘어 있는 건 '간경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 원인을 모른다는 것. 의료진도 "간암으로 진행될지 여부는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고3이잖아요. 수능시험이 끝난 뒤 검사해보려고 했는데 방학 끝날 무렵 검사를 했더니 간암이라고 하더군요."
유군의 어머니 엄향순(44·여)씨는 아들의 병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아들은 밝았고 가족들에게 즐거움을 줬으며 무엇보다 잔병치레가 없던 터였다. 결국 간 이식 외에는 답이 없다는 의료진의 말에 에어컨 설치 일용 근로자인 아버지 유(48)씨도, 어머니 엄씨도 간 이식 관련 검사를 받았다. 무엇보다 장기매매를 막기 위해 친인척 이외에는 간 이식에 나설 수 없는 현 법령 때문이기도 했다. 결과는 부적합 판정이었다. 더 큰 문제는 위급한 정도에 따라 간 기증자로부터 이식을 받을 수 있지만 당장 유군은 위급한 상황이 아니었다.
문제는 또 있다. 일거리가 들쭉날쭉한 아버지 유씨의 형편과 허리 통증으로 일을 제대로 못하는 어머니 엄씨의 사정상 암세포 제거 수술에 들 비용 마련이 어렵다는 것이다. 한 달 전 입원한 유군을 최근 5인실에서 8인실로 옮겨야 할 정도로 가계는 힘겨웠다. "수술비가 1천만원 넘게 든다는 데…." 어머니 엄씨의 눈빛에는 불안감이 역력했다.
유군은 그래도 달랐다. "당장이라도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병원에 있어야 한다네요.(웃음) 운동장을 딱 한 바퀴만이라도 쉬지 않고 달려봤으면 좋겠어요. 땀 흘렸을 때의 상쾌한 기분 아시잖아요."
간암 발견 이후 유군은 진로를 바꿨다. 현재 지역의 한 대학 신학과 수시모집에 지원해놓은 상태. 요즘은 그래서 성경을 읽는 데 시간을 많이 들인다. "개그 MC가 관객들 앞에서 웃음코드를 자극해 사회를 보듯이 목회자도 신도들의 고통과 고뇌를 덜어놓게끔 하잖아요." 하지만 유군은 개그 MC의 꿈은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There's nothing too late. 세상에 늦은 건 아무 것도 없다잖아요"라며.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