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똥.떵.어.리. 그들은 과연 폭군인가
독불장군식 태도에 오만함과 안하무인이 묻어나는 말투며, 툭 하면 "나가"라고 외치는 독재자. 그의 곁에 남은 친구란 견공(犬公) '토벤'뿐이다. 그런 그가 수목 드라마계를 평정했다. 드라마 팬들은 파마 머리를 한 '강마에'(김명민)가 뿜어내는 강렬한 카리스마에 쏙 빠져 있다. 밉상이면서도 밉지 않은 강마에가 뱉어내는 말 한마디는 어록이 되고,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그로 인해 새삼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세계.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는 지휘자를 제대로 그려내고 있을까? 그리고 '베바'가 놓치고 있는 지휘자의 비밀엔 어떤 것이 있을까?
▶지휘자는 절대음감 가졌다?
드라마 속에서 강마에는 연습 도중 단원들의 실수나 미세한 음정을 척척 짚어낸다. 흔히 말하는 '절대음감(絶對音感)!'의 소유자.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곽승 대구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는 이 질문에 대해 바로 "그래야지, 안 그러면 큰일"이라고 답했다. 연주자와 달리 지휘자는 수많은 악기를 조율하며 화음(harmony)을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지휘자는 '어디에 어떤 유능한 연주자가 있는지'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지' 등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각 악기 섹션마다, 또 같은 악기 섹션 안에서도 리듬이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휘자는 각 연주자의 연주를 이끌어 전체적으로 한 곡으로 통일성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만큼 머리가 좋아야 한다. 각종 악기 멜로디와 화음이 적힌 악보를 모두 외우고, 연주할 때에는 이를 모두 속독해야 한다.
▶지휘자는 독재자?
강마에는 폭군에 가깝다. 연습시간에 연주자의 실력이 떨어지거나 조그만 실수라도 발견하면 가차없다. 그 자리에서 온갖 폭언을 쏟아낸다. '쓰레기'라는 표현도 다반사다. 첼로 연주자에겐 '똥덩어리'라는 말까지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프로의 세계에서도 통하는 룰이 있는 법. 단원들도 그러한 모욕을 가만히 듣고 있지만은 않는다.
그러나 지휘자에겐 '리더십' 내지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타고나든, 실력을 길러서든 이런 것이 없이 다양한 음색과 개성의 악기와 단원을 이끌기란 불가능하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지휘자란 존재가 필요하다. 19세기 서양음악에서 전문 지휘자가 생겨난 것도 구성이 복잡해진 악기를 제대로 조율하기 위한 까닭에서였다. 이를 위해 지휘자는 음악적 실력을 키워야 한다. 카라얀 같은 독재형 지휘자이든, 이현세 현 경북도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같은 온화형 지휘자든 마찬가지. 정명훈씨가 예술감독으로 있는 서울시향의 경우 혹독한 연습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국제적 명성과 실력의 정 예술감독이 이끄는 대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연주자 스스로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이런 식으로 유능한 지휘자는 단원 스스로 자신의 지도·지휘에 따라오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뭐가 틀렸다는 거냐?
지휘자의 카리스마도 결국엔 실력에서 나온다. 베바에는 단원들을 밀어붙이는 강마에에게 '뭐가 틀린 거냐?'며 강건우가 꼬박꼬박 물어보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강마에도 토벤에게 "사실 나도 어디가 어떻게 틀어진 건진 잘 몰라. 살짝 어긋났다는 것만 알 뿐이지"라고 고백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단원들은 지휘자를 신뢰할 수 없게 된다.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은 한결같이 "5~10초 안에 지휘자의 실력이 탄로난다"고 말한다. 그 짧은 순간에 '이 사람이 우리를 충분히 리딩하겠다' 내지 '실망이다. 믿음을 못 가지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는 말이다.
연주가 틀렸으면 '어디가 어떻게 틀렸다' '이 부분은 이렇게 하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지시할 수 있어야 단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시향의 한 연주자는 "작곡 전공 출신 지휘자 중에 '빨간색 음' '파란색 음' 등 추상적인 단어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런 지휘자가 단원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연주자이기도 하던데?
강마에는 유학 시절 콩쿠르에서 피아노로 숙적 정명환과 공동우승을 한 것으로 나온다. 정명훈 예술감독도 피아노로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지휘자가 하나 이상의 악기를 완벽하게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한 악기의 소리를 구체적으로 느끼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요건이다. 특히 피아노는 음역이 가장 넓어 오케스트라 구성 악기 전체의 음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고 반주까지 넣을 수 있어 선호된다. 곽승 대구시향 예술감독은 트럼펫으로 시작해 첼로, 피아노 등을 전공했다. 그는 지휘 희망자에게 연주자로 교향악단 생활을 해볼 것을 추천한다. "교향악단 생활 안 해 보면 지휘자로 자리 잡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했다.
▶지휘자는 어떻게 될 수 있나?
베바의 주인공 강건우는 트럼펫을 불지만 강마에의 지휘를 보고 그 매력에 빠져든다. 곽승, 정명훈 예술감독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자기 악기를 전공하면서 지휘를 같이 배우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국내에는 계명대나 서울대, 한국종합예술학교 등에서 지휘를 전공할 수 있다. 그러나 전공 후 경력을 쌓을 여건이 국내에는 부족한 편. 그래서 일반적으로 외국에서 나가서 공부를 하고 경력을 쌓은 뒤 국내에서 지휘봉을 잡는 경우가 많다. 지휘자가 되려면 악기 연습도 하며 음악 이론이나 작곡, 성악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관객의 시선, 부담스럽지 않을까?
지휘자는 관객을 향해 등을 돌린 채 지휘를 한다. 청중과는 주로 등으로만 만나게 된다. 그러니 아무래도 청중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막상 연주가 시작되면 신경을 쓸 틈이 없다. 연주자들을 이끌고 '음악 만들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지휘자의 위치란 것도 부담이 된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에서 '하나씩만 있는 직업'이다. 그만큼 좁은 분야일 수밖에 없으니 시선이나 몸가짐이 조심스럽다. '택하는 것 자체'가 독종이 될 수밖에 없는 '고독한 직업'이자 '피곤한 직업'이다. 경북도향의 한 단원은 이를 두고 "지휘자는 일종의 '수련과정'"이라고 했다.
▶지휘, 금녀(禁女)의 영역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성지휘자도 있다. 남녀평등 시대 아닌가? 세계 최초의 여성 지휘자로는 마린 알솝(Marin Alsop·미국)을 꼽을 수 있다. 1956년생인 알솝은 2세 때부터 피아노, 5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고 1979년 카를 밤베르거로부터 지휘자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1990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지휘자 데뷔 무대 이후 여러 곳에서 음악감독직을 맡았다. 2005년에는 볼티모어 심포니의 음악감독이 됐다. 새라 이오니디스(Sarah Ioannides·36·호주)는 2005년 미국 엘파소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스파르탄부르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에 임명됐다. 107년 역사의 신시내티 오케스트라의 첫 여성 지휘자이기도 하다.
한국 최초의 여성 오케스트라 지휘자로는 김경희 숙명여대 기악과 교수가 있다. 숙명여대 작곡과 출신인 김 교수는 1988년 베를린 국립예술대학 지휘과에서 음악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 대전시립교향악단의 초청 지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지휘자 생활을 해왔다. 여성 최초로 프랑스 국립 파리 오페라좌 관현악단 지휘를 맡은 일본 출신 미사 조노우치 등 다수의 여성 지휘자가 현재 활약 중이다.
▶지휘자, 직업병을 앓는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연주 실력을 유지·향상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한다. 이들의 연주를 진두지휘하는 지휘자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대부분의 연주자가 의자에 앉아서 연주를 하는 것에 비해 지휘자는 몇 시간을 꼬박 서서 지휘한다. 끊임없이 몸도 움직여야 한다. 그만큼 육체적으로도 고된 직업. 그래서 몸을 긴장해 경직되게 지휘를 하면 목이나 어깨, 허리, 손목을 다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연이 오히려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단순한 일을 반복하면 직업병이 생긴다. 그러나 지휘는 매번 같은 때가 없이 더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과정이라 직업병이 있을 수 없다"는 반응도 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 화제가 된 '강마에'의 말·말·말
▶"방금 들은 연주는 쓰레기입니다. 이건 뭐 도저히 참아줄 수가 없네요. 저는 더 이상 브람스를 이 따위 연주로 더럽힐 수 없습니다. 비싼 돈 주고 표 사서 들어오셨죠? 당장 주최 측 가서 환불 받으시고, 그 돈으로 브람스CD를 사서 들으세요. 집에 가서 샤워들 꼭 하시고, 특히 귀에 때를 빡빡 밀어주시기 바랍니다."(제1화. 대통령 내외가 초빙된 연주회에서 연주를 중단하며 관객들을 향해)
▶"말을 제대로 들어! 설렁설렁 놀면서 최고 지휘자가 된 그놈 앞에서 내가 저딴 쓰레기들을 데리고 공연을 해야 된다고! 바로 너 때문에!"(제2화. 경쟁자인 정명훈 앞에서 실력 떨어지는 단원들을 데리고 공연해야 하는 것에 대해 좌절하며)
▶"니들은 내 악기야. 난 오케스트라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거고 니들은 그 부속품이라구. 늙은 악기, 젊은 악기, 울며 뛰쳐나간 똥덩어리 악기, 회사 다니는 악기, 카바레 악기, 대드는 악기…. 아니, 니들은 그냥 개야. 난 주인이고. 그러니깐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짖으란 말야."(제3화. 건우가 '왜 틀린지 설명도 안 해주는 지휘자'라며 책망하자)
▶"내 악장입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내 오케스트라 악장이고 내 단원들입니다! 함부로 무시하는 거 나 못 봐줍니다. 이 사람들을 무시할 권리는 오직 저한테만 있습니다. 내 껍니다! 시장이 아니라 대통령이 와도 그거 월권 못합니다!"(제4화. 공연비 사기당한 사실을 알아버린 시장이 악장에게 힐책을 하자)
▶"이기적이 돼야 합니다. 여러분은 너무 착해요. 아니, 착한 게 아니라 바봅니다. 부모 때문에, 자식 때문에, 애 때문에, 희생했다? 착각입니다! 결국 여러분들 꼴이 이게 뭡니까? 하고 싶은 건 못하고, 생활은 어렵고, 주변 사람 누구누구들 때문에 희생했다. 피해의식만 생겼잖습니까! 이건 착한 것도, 바보인 것도 아니고, 비겁한 겁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100가지도 넘는 핑계를 대고 도망친 겁니다, 여러분들은!"(제4화. 공연하기로 결심한 뒤 단원들을 독려하며)
▶"우리 공연도 마찬가집니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도 이만큼 할 수 있다, 반란을 보여 줄 겁니다.…충분히 그럴 거라고 전… 믿습니다."(제5화. 첫 공연에서 마지막 곡인 '윌리엄텔 서곡'에 대해 설명하다가 단원들을 돌아보며)
▶"저런 재능을 갖고 여태껏 뭐한 거야! 저런 병신 같은 게…."(제7화. 건우의 천재성을 확인한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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