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되풀이 되지않도록…" 사고 당시 구조물 그대로 보존
1995년 상인동 가스폭발 참사, 2003년 지하철 화재 참사, 2005년 경북 상주 공연장 압사 사고. 대구·경북에서 최근 10여년간 발생한 재난들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재난에 대해서는 몸서리칠 정도로 민감한 것이 지역정서다.
과거를 이겨야 미래에 대비할 수 있다. 방재시스템 확보는 물론 사후 복구와 대처는 미래를 위한 초석이다. 그저 매번 큰 사고가 터질 때마다 '인재(人災)로 화를 키웠다'는 판에 박힌 지적에서 벗어나 '방재는 곧 전쟁대비 태세'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자연재해가 잦은 이웃나라 일본은 모범 교과서나 다름없었다. 일본은 '사후 대처'에서도 방재 선진국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남기지 않으면 기억하지 않는다."
고베신문사 편집국을 찾았을 때 한 직원은 5시 46분에 멈춰있는 벽걸이 시계를 가리켰다. 고베대지진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고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누구도 기억하지 않지요."
1995년 1월 17일 오전 5시 46분 일본 효고현 남부의 고베시 일대를 초토화시킨 진도 7.2의 지진으로 6천300여명이 숨지고 2만6천여명이 다쳤다. 피해가 고베시 반경 100㎞ 안에서 집중 발생, 피해액이 1천400억달러(한화 약 140조원)에 이를 정도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재난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이때 교훈을 얻은 일본 정부는 1996년부터 현재까지 '지진 방재 긴급사업'을 꾸준히 펴오고 있다. 재난 당시 상황 보존과 위령탑 건립은 물론 대재앙을 잊지 말고 대비하자는 의미로 당시 상황을 분석하고 기록한 '사람과 방재 미래센터'를 세웠다. (사진1)
고베시는 대지진이 일어난 당시의 구조물들을 시민들의 발길이 잦은 바닷가에 그대로 보존, 시민들의 안전의식을 고양시키고 있었다. 위령탑도 인근에 세웠다. 교토대 방재연구소 이영철 연구원(전 속초소방서장)은 "대형 재난을 겪으면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지게 되지만 일본인들은 그때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고 했다. (사진2, 3)
일본에서 관동대지진(1923년 9월 1일)이 일어난 날을 전후한 1주일(8월 30일~9월 5일)간은 '방재 주간'이다. 이 주간에는 '방재 주간'이 제정된 1960년 이래 방재관련 행사가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학교 학기가 시작되는 9월 1일을 기점으로 열리는 행사는 얼핏 한국의 민방위훈련과 닮은 듯했지만 내용은 크게 달랐다. 미래의 주역인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지난달 6일은 일요일이었다. 하지만 교토시시민방재센터에서 열린 방재·구호전 행사장은 아이들 손을 끌고 온 부모들의 발길로 북적였다. 시미즈(10)양은 "매년 있는 방재주간이지만 부모님과 함께 와 방재와 관련된 게임과 놀이를 하기 때문에 하나도 지겹지 않다"고 했다. 초교생 30여명은 헬리콥터를 타고 불끄기, 소방용호스를 이용한 불끄기 등을 게임을 통해 배워가고 있었다. (사진4)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도쿄소방청 다찌가와 도민방재교육센터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방재와 관련된 물품과 도구에 친숙함을 심어넣어 자연스레 방재의식을 갖도록 해놓았다. 소화기 모형 지우개와 액세서리 등으로 아이들의 관심을 유도했다. 지진 태풍 등 자칫 아이들에게 충격적인 영상을 보여주는 데도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방재관 안내를 맡은 모리가와(65)씨는 "대형재난 영상을 보고 우는 아이들이 태반"이라면서도 "충격적인 장면을 본 아이들은 방재훈련에 더 적극적으로 참가한다"고 설명했다.
교토대 방재연구소 거대재해연구센터 노리오 오카다 박사는 "재난이 발생하면 사람의 목숨을 어떻게 구할까 먼저 생각하지만 그 이후는 살아남은 사람이 어떻게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느냐가 중요하다"며 "살아남은 사람을 위해서라도 과거를 철저히 분석해 앞날을 대비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 교토대 방재硏 오카다 박사 "재난 시나리오 이미 완비…어떤 재해에도 즉각 대응"
"왜 이사를 갑니까? 재해를 예방하고 집을 튼튼하게 지으면 되지 않겠어요?"
기자는 교토대 방재연구소 거대재해연구센터 노리오 오카다 박사에게 "한신-아와지(고베) 대지진을 겪은 뒤 또다시 인근에 대규모 지진이 있을 거라는 얘기가 1976년부터 계속 있었는데 안전한 곳으로 이사가는 이들이 있느냐?"고 물었다.
오카다 박사는 "지진은 10여초 만에 끝나기 때문에 그 정도를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건물을 짓고 대비하면 된다"고 했다. 과거 100년의 기록을 토대로 한 세기에 한 번 일어날 수 있는 큰 재난에 대비하고 방재에 신경을 쓰면 재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그만 아니라 보통 일본인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다.
일본 역시 '한신-아와지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이같은 인식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예전에 일본은 재난 이후 복구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젠 아니다"며 "지금은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재난관리(Risk Management)'라는 개념을 도입해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난 피해를 전략적으로 감소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사전에 재난 시나리오를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해 짜고 있다.
그는 "'한신-아와지 대지진'은 오전 5시 46분 전철이나 신간센(新幹線)철도가 움직이기 전에 일어났기 때문에 다행스러웠다"며 "하지만 시민들이 출근을 시작하는 30분 후에 일어났다면 어떻게 됐을 것인가 하는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았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도 집중호우, 게릴라성 호우와 태풍 등의 재난이 일정한 패턴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전략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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