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동의 전시 찍어보기] 비디오를 통해 사유하는 예술정신

입력 2008-10-03 06:00:00

박현기 유작전/ 대구문화예술회관/ ~10.19

▲ 오는 19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박현기 유작전.
▲ 오는 19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박현기 유작전.

비디오 설치미술가라고 불리는 박현기 선생의 유작전이 '현현(顯現)'이란 제목으로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5개 전시실에 나뉘어 펼쳐진 유작들은 최대한 원래의 모습에 가깝게 되살려내어 고인의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명해보려는 것들로서 미술사적으로도 매우 의미있는 큰 전시회라고 생각된다.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가 등장한 것은 추상표현주의로 대표되던 모더니즘의 형식주의에서 그만 벗어나고자 했던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의 경향이 출현할 무렵이었다. 당시의 실험적인 예술가들은 이 매체가 지닌 전달 기능과 영상으로 저장되는 텍스트의 형식에 주목을 했다. 박현기의 경우도 회화에서 재현(반영)적인 기능이 지닌 문제를 비디오 아트를 통해 실험했다. 자연의 실재와 비디오로 촬영한 가상 이미지를 연결하며 조형적 사유를 탐구하는 수단으로써 처음 비디오를 택한 것이다. 그는 물이나 돌, 나뭇가지와 같은 자연적 소재들을 전자미디어가 만들어내는 비물질적인 영상과 조화시키면서 자연과 인간과 기술의 친화적 합일을 꾀하는 범자연주의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그 비디오 미학의 기저에는 동양적 정신성이 큰 자리를 잡고 있다. 흐르는 강물 속에 거울을 세워 물결이 반영되는 모습과 그 상황을 연출하는 행위를 통해 예술의 본성으로 언급되어온 미메시스(Mimesis) 문제를 부각시키는가 하면 또 그 자연의 물을 영상으로 실내에서 투영시키는 설치작업을 통해 미학적 사색을 동양사상의 명상적 사유로 이끌어 가기도 한다. 텔레비전 모니터나 프로젝션의 투사 화면의 설치는 단순한 스크린으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미니멀리즘적인 조형 공간을 창출하는 데 기여하는 것 또한 그의 설치작품의 특징이다.

작품의 자기지시적인 면과 내성적인 성향이 우리사회의 소위 '포스트모던적인' 상황을 맞아 놀라운 변신을 시도한 점은 특히 괄목할 만하다. 1990년대 후반에 제작된 '우울한 식탁' 시리즈는 테이블에 놓인 둥근 대형 접시에 자신의 안면과 수족을 주조한 석고 조각들을 음식처럼 담아놓고 그 위로 몽타주한 몇 가지 영상을 투사시키는 작품이다. 영상의 내용은 전쟁이나 시위 장면 또는 삼풍백화점 붕괴나 상인동 가스폭발 사고 같은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는 재난 장면들이 편집된 것인데 쉴새없이 빠른 속도로 투사된다. 이렇게 구체적 사건들로 구성하는 것은 개념적이던 이전의 내용과 비교할 때 매우 이례적이다. 산만하면서도 대단히 역동적인 영상은 정치 사회적인 메시지가 강하게 암시된다. 그 영상이 자신의 신체를 상징하는 석고 조각들 표면 위에 투영되는 점은 육체적으로 맞닿고 있는 현실과의 관계를 상징하는지? 또한 식탁이라는 상황의 설정도 현대인의 일상적인 삶속에서 어떻게 그런 뉴스들을 소비하는지 그 패턴을 함의하는 것인지? 작품의 의미를 다양한 해석과 풍부한 문화적 담론으로 이어가게 하는 구도들이다. 미니멀리즘 비디오 미학 본래의 내적 관점으로부터 그 시선을 외부로 옮긴 결과 나온 것이 다음 '만다라' 시리즈라면 포스트모던 사회의 복합성과 이질적 요소들을 통찰하는 관조적 자세가 돋보이는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작가가 우리에게 남겨주고 떠난 것은 여기까지이지만 후일에 일으킬 반향은 더 클 것 같다.

김영동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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