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노모·정신지체 딸과 임대아파트 생활 김미영씨

입력 2008-10-01 08:44:17

7년전 남편 잃고 네 식구와 힘겨운 하루하루…

▲ 천식으로 쿨럭대며 입을 가렸다 얼굴을 쓸어내리는 김미영씨의 시름은 깊다. 아이들에겐 믿음직한 버팀목이 돼야 하는데 몸은 시간이 갈수록 소진돼가기 때문이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 천식으로 쿨럭대며 입을 가렸다 얼굴을 쓸어내리는 김미영씨의 시름은 깊다. 아이들에겐 믿음직한 버팀목이 돼야 하는데 몸은 시간이 갈수록 소진돼가기 때문이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IMF 외환위기로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던 한창이던 1998년.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내 집'이 생겼다는 기쁨에 설레어 있었어요. 1983년 결혼해 15년만에 내 집이 생겼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아직도 그 주소를 기억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걸 남편과 맞바꿔야 했어요. 남편이 저 세상으로 가면서부터 쭉 여기 살고 있어요."

김미영(51·여)씨 가족이 사는 곳은 대구 중구 남산동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였다. 43㎡(13평) 남짓한 집에는 두 칸의 방이 있었다. 노모와 두 자녀까지 네 식구가 함께 살고 있었다. 큰 딸(25)은 집이 좁아 이모집에 살고 있다고 했다. 문고리가 고장나 문을 닫을 때마다 문고리가 쑥 뽑히는 집이었다. "고쳤는데도 이러네요"라며 겸연쩍은 웃음을 짓는 김씨의 얼굴엔 민망함이 묻어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노모의 눈빛엔 체념이 스며 있었다.

환히 웃으며 나타나는 지수(21·여)는 정신지체 1급 장애인이었다. 세 살배기의 지적 수준이어서 자신을 보고 웃어주는 이들을 보면 웃음보가 터진다고 했다. 취재진을 본 지수는 자지러지듯 웃었다. 그 뒤에 덩치 큰 막내 태성(13)이가 서 있었다.

"82㎡(25평 규모) 세 칸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남편과 서로에게 '고생 많았다. 세 남매를 키우며 알뜰히 살아줘 고맙다'는 말을 주고받았어요. 벌써 10년이 지났네요. 기억이 아직도 선한데…." 김씨의 목이 맸다. 몇 마디 더 잇지 못하고 끝내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흐르는 눈물은 한참을 이어졌다. 기침을 쿨럭이더니 이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김씨. 천식을 앓고 있어 그렇다고 했다.

내 집 마련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던 그 해 1998년. 하지만 김씨는 경북 경산의 한 버스회사에서 자동차 정비사로 있던 남편의 배가 부풀어오르고 있다는 걸 몰랐다. 회사에서 일하며 버스 밑에 들어가 정비를 해야 하는 남편은 "배가 나와서 버스 밑으로 잘 못 들어가겠다"고 했다. 덩치가 좋았던 남편이었기에 큰 걱정은 않았다는 김씨. 병원에서는 "복수가 찼다"고 했다. '급성간경화'라는 귀에 익지 않은 말을 전했다. 잘 쉬어주고, 잘 먹으면 될 거라는 생각만 들었다. 3년간 투병생활이 이어졌다. 15년간 꿈꿨던 '내 집' 입주는 잠시 미뤘다. 전세임대금으로 병원비를 대기 시작했다. 3년이 지난 뒤 의료진은 남편에게 "간이식 수술을 받지 않으면 답이 없다"고 했다. 간 기증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기엔 하세월, 수술에 드는 비용은 1억원을 넘는다고 했다. 더 막막한 건 "수술을 하더라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의료진의 말이었다.

남편의 내장은 고장나 있었다. 매일같이 "배가 너무 아프다. 살려달라"고 했다. 남편이 저 세상으로 간 지 7년이 지났지만 그 말이 아직도 귓전을 때린다는 김씨. 하지만 가족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병원에 데려가는 것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내 집'은 그 때부터 신기루로 변했다.

2001년 남편을 보낸 뒤 김씨에겐 천식이 찾아왔다고 했다. 말을 하다가도 자지러지듯 기침을 쏟아냈다. 멎지 않는 기침에 "너무 아프다, 살려달라"는 남편의 고통이 섞인 것 같다는 김씨. 평생 약을 먹어야 할 운명이라는 의사의 말에 맥이 빠진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빚'. 남편이 숨진 뒤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들을 기르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시도때도없이 터져나오는 기침 때문에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정부의 생계지원비 52만원, 남편이 사망하면서 나오는 국민연금 29만원, 지수의 장애수당 16만원까지 한 달에 97만원의 돈이 생기지만 네 식구가 살기엔 모자란다고 했다. 그래도 보험료는 매달 내고 있다고 했다. 남편의 갑작스런 발병과 죽음으로 남겨진 자의 힘겨움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였다. 남편 덕분에 나오는 국민연금 수령액은 고스란히 보험금으로 넣고 있다는 거였다.

빠듯하다 못해 힘겨운 살림이기에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는 김씨는 쿨럭거리면서도 일거리를 찾았다고 했다. 최근에야 지인의 소개로 가방공장에서 스포츠가방 만드는 일을 한 번씩 한다. 하루 3만원 정도 손에 넣을 수 있지만 그마저도 일거리가 많지 않아 한달에 열흘 정도 일하는 게 고작이다.

어느덧 초교 6년생이 된 막내 태성이는 그간의 힘겨움 때문인지 또래에 비해 철이 일찍 들었다. 누나 지수와 잘 놀고 엄마에게 떼쓰는 일도 없다. 엄마는 그게 오히려 가슴 아프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말에 태성이는 서슴없이 "자동차 정비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김씨의 얼굴도 금세 찡그려졌다. 손재주가 있는 아들은 남편을 빼닮아 초교 6년생이지만 벌써 162cm, 62kg의 거구다. 하지만 아들에게 적당한 공간을 내주긴 어려운 현실이다.

"온가족이 함께 있어 마음만은 편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이고 아이들에게 죄스런 마음을 감출 순 없다"며 눈시울을 붉히며 터져나온 김씨의 기침소리는 깊고 굵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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