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에 반한 '희한한 아가씨' 전국을 헤매다

입력 2008-10-01 06:00:00

이순신을 찾아 떠난 여행/이진이 지음/책과함께 펴냄

이순신(1545~1598).

불세출의 영웅이다. 명신(名臣)에 명장(名將)이자 가장(家長)으로, 또 무엇보다 한 인간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귀감이 될 인물이다. 그러나 교과서와 위인전에서 만난 '이순신'은 박제된 모습이었다.

시인 김지하는 '구리 이순신'이란 희곡을 발표한 적이 있다. 구리동상 속에 갇힌 이순신과 엿장수의 설전을 통해 성웅(聖雄)이란 틀 속에 갇힌 이순신을 풍자한 작품이다. 과하면 모자람만 못한 것일까. 이순신이 그랬다. 충성의 화신으로만 그려지면서 오롯한 그의 모습이 간과된 것은 사실이다.

이 책은 이순신에 매료돼 그의 발자취를 찾아 전국을 헤맨 여성 방송작가(대구MBC)의 이순신유적답사기다. 2005년 아산 현충사를 시작으로 부산, 거제, 통영, 여수 등 임진왜란의 격전지를 찾았고, 경남 합천에서 전남 장흥에 이르는 백의종군로와 연안 답사길 800여㎞ 코스를 답사하기도 했다.

얼마나 열정적으로 심취했는지, 이순신 연구가들에게는 "희한한 아가씨"로 통하며 이순신의 덕수 이씨 종가에서는 해마다 음력 11월 19일 기제를 올릴 때 그녀에게 참석을 당부하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제관이 되어 남자들이 입는 제관복을 입고 헌작(제사에 술잔을 올리는 것)하기도 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고지도 필사가 최현길씨의 미완성 '임진왜란 해전도', 이순신 후손인 이종국씨가 소장하고 있는 '이순신세가'의 내용, 한때 논란이 일었던 백의종군로와 명량대첩비에 얽힌 사연 등 '발'과 '열정'이 아니고는 실을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또 이순신의 흔적이 닿은 남도 땅 곳곳을 살피며 자칫 스치고 지나기 쉬운 이순신 유적지를 애정 어린 눈으로 그려내고 있다. 직접 찍은 사진들을 올 컬러로 수록하고, 권역별 답사코스를 지도와 함께 곁들였고, 임진왜란 연표와 이순신의 행적, 참고서적들과 함께 온라인사이트까지 꼼꼼하게 실었다. 또 답사길에 만난 사람들의 표정까지 세세하게 담아 글 읽는 맛을 더해 주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읽다 보면 이순신의 숨결이 귓전에 맴돈다는 것이다. 7년 전쟁의 소용돌이, 군신의 갈등, 그렇지만 차마 뱉을 수 없는 응어리 등 이순신의 심적 변화를 현재에 투영한 지은이의 애정 때문이다. 마치 옛 연인의 발자취를 찾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왜 이순신일까? 여성으로서, 남성적 메커니즘의 정점에 있는 이순신에게 매료된 이유는 뭘까?

지은이는 "나 또한 이순신이라고 하면 유신정권이 주입한 국가관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순신 역시 인간이기에 불완전했고, 그 불완전함을 고뇌와 의지로 극복해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내 안에 새로운 이순신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서문에 적고 있다.

이순신이 가장 힘든 시기에 가장 빛나는 행보를 보였듯이, '이순신을 찾아 떠난 여행'은 그녀에게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여정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성실한 책이다. 399쪽. 1만4천800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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