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진의 책속 인물읽기] '인간교실'의 윤명주

입력 2008-10-01 06:00:00

악(惡)은 악으로 남을 뿐이다

1960년대 초. 한강변에 아담한 주택을 갖고 있는 주인갑(이름)씨는 비닐 생산업에 손댔다가 실패했다. 실직 상태다 보니 생활이 군색했고 식구가 적어 집의 방은 두 개나 남아돌았다. 그래서 뒤쪽에 붙은 방을 세놓았다.

마뜩잖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마침내 들어온 사람이 여대생 윤명주와 조선영이었다. 윤명주는 굉장한 미인이었고 조선영은 똑똑한 학생이었다. 주인갑씨는 '첫 인상이 만점'이라며 방을 세주었다.

평범한 여대생인줄 알았던 윤명주는 퇴학당한 뒤 댄스홀에 나가며 매춘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고급창녀였다. 미모와 싱그러운 육체, 지성미를 무기로 사회 저명인사를 꼬드겨 매춘하는 방식이었다. 창녀촌의 매춘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남자가 십 여명 정도로 제한돼 있고, 그들을 자신의 셋방으로 불러들여 매춘한다는 점이었다.

주인갑씨는 '방을 빼든지 매춘을 중단하든지 결정하라'고 했지만 '1년 계약'을 이유로 그들은 방을 빼지도 매춘을 그만두지도 않았다. 더 나아가 윤명주와 조선영 옆에 안동철이라는 청년이 나타났다. 그들은 한패였다.

고급 창녀 윤명주와 대학생 조선영, 안동철. 이 세 사람은 성차별적 인습에 젖은 남성에게 복수하고, 그들의 돈을 뜯어 기술고등학교를 설립하겠다고 했다. 재능은 있지만 가난한 학생들에게 무료나 실비로 교육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덕망가로 행세하면서 매춘을 일삼는 자들을 징벌하고 그들의 돈을 뜯어 사회사업도 하겠다는 것이다.

윤명주가 매춘해서 번 몇 푼 안 되는 돈으로는 학원사업을 시작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윤명주와 사회명사들의 성행위 장면을 촬영한 뒤 그것을 무기로 사업자금을 뜯어낼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돈을 내면 필름을 돌려주었고, 돈을 내지 않으면 공갈과 협박을 일삼았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일당은 집주인 주인갑씨를 원하지도 않은 고문자리에 앉힌 후 이런저런 소소한 편의를 취해갔다. 귀찮은 소리를 하도 해대는 바람에 '그냥 써라'고 내 준 응접실을 자신들의 사무실로 강취하는 지경이었다. 제멋대로 현판을 붙이고, 인테리어를 하고, 손님을 불러들이고, 제멋대로 사용했다. 주인갑씨가 불만을 터뜨리기라도 하면 얼떨결에 도장을 찍어준 '무료 대여'라는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그런 계약서는 의미 없다'며 뻗대면 싸움에 익숙한 안동철이 은근슬쩍 폭력을 암시하기도 했다.

'법은 무겁고 주먹은 가깝다' '국가 간에도 외교가 잘 안되면 전쟁이 나지 않느냐? 아저씨와 우리 사이에 대화가 안되면 폭력을 쓸 수도 있다' '협조만 잘 해주면 섭섭지 않게 해주겠다'는 등 공갈과 협박, 회유를 동원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우리가 나쁜 짓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나쁜 놈들 돈 빼앗아 좋은 일(교육사업)에 쓰겠다는데 왜 협조하지 않느냐'고 했다.

세 사람이 매춘 장면을 촬영하고 이를 무기로 돈을 갈취하는 주된 이유는 '가난한 학생을 위한 학교사업'을 위해서다. 이 부분은 윤명주 일당의 눈속임이 아니다. 그들의 목표는 돈을 갈취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갈취한 돈으로 학교를 설립하는 데 있다. 말하자면 그들은 선한 목표를 위해 악행을 감행하는 것이다.

시정잡배가 아니라 이른바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 고상한 영혼과 인간적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어째서 그처럼 '욕설'을 쏟아내는 것일까. 이들은 근본 심성이 악한 것일까?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들은 대체로 정의로운 성품을 가진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다만 정의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거치적거리는 것' '방해꾼' '몰이해자'를 만나면 그들을 악당으로 간주한다. 말하자면 '정의로운 나를 방해하는 너는 악이며 따라서 타도대상'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정의로운 그들'은 공격적이며 욕설 혹은 폭력을 서슴지 않는다. 목적이 옳다면 과정은 좀 거칠거나 나빠도 상관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목적이 선하다면 '수행과정의 악'도 선해진다고 믿는다.

윤명주와 조선영 안동철의 매춘장면 도찰과 공갈 협박도 이 '욕설'과 '폭력'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학교를 지어 가난한 학생들을 공부시키겠다는 선한 목표를 실행하기 위해 매춘도찰과 공갈협박쯤은 감수해야 할 과정인 셈이다.

목적을 신성시하는 사람들은 흔히 과정에서 벌어지는 악에 둔감해지고, 종내에는 악한 과정조차도 선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더 나아가 '잘못된 과정'에 대해 누군가 비판을 하면 '반동'으로 몰아세우기까지 한다.

때때로 선을 위해 악을 선택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한 목적이 '수행 과정의 악'에 대해 면죄부를 주지는 않는다. 체게바라는 '수단이 비열하면 목적은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는 '목적을 위해 어떤 수단을 써도 좋다'는 입장이었지만 '비열한 수단, 즉 악은 악으로 남는다'고 구분했다. (여기서 악은 단순히 폭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또 수단으로써 폭력이 언제나 악은 아니다.)

(나이를 들면서 더욱 느끼는 것이지만) 목적뿐만 아니라 수단 역시 중요한 가치이다. 수단은 단순한 통과의례가 아니며 그 자체가 전체이기도 하다. 개인이 살아가면서 동원하는 많은 수단들이 모여서 개인의 종합적인 인생이 된다. 수단이 비틀려 있다면 결국 그의 인생도 비틀려 있을 게 분명하다. 이 책 '인간교실'은 소설 '잉여인간'으로 잘 알려진 작가 손창섭이 신문에 연재했던 소설이다.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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