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시장불안을 잠재워라

입력 2008-10-01 06:00:00

환율 계속 올라갈 가능성 높아/섣부른 개입 오히려 불신 초래

미국 워싱턴 DC로 6개월 장기 출장을 왔다. 세계 금융의 심장부인 미국에서 느끼는 금융 위기감은 한국에서 접한 현실과 너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대마불사일 것 같았던 거대 금융회사들이 무너지고 있고 시장에는 절대 개입하지 않을 것 같았던 미국 정부가 금융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AIG에 구제금융을 하기로 결정했다.

반면 거대 투자은행(IB)인 리먼 브러더스의 지원 요청은 일언지하에 거절해버리는 과단성을 보여 지켜보는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메릴린치도 뱅크오브아메리카에 주당 29달러, 약 500억달러에 매각됐다. 세계 금융을 휘젓던 리먼 브러더스와 메릴린치가 최후를 맞을 줄 누가 알았던가.

그런 미국 시장에 또다시 악재가 터졌다. 미국 금융위기 해결을 위한 마지막 대안으로 여겨진 구제금융법안이 9월 29일 하원에서 부결되면서 미국 월스트리트는 물론 전 세계 금융시장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부시 행정부와 여야 지도부 등이 사태수습을 위한 조율에 나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한으로 보이는 이번 주는 세계금융시장에 그야말로 주목받는 일주일이 될 전망이다.

미국과 전 세계가 금융위기 확산 방지를 위해 총력전에 나서지 못하면 재무구조가 취약한 금융회사들, 그리고 대외적 충격에 약한 국가들부터 먼저 위기 상황으로 내몰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시스템이 중단되는 멜팅 다운 현상을 불가피하게 겪게 될지도 모른다.

모기지 관련 부실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미국 금융회사들은 물론 국제적인 유동성 부족 사태로 자금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될 세계 금융회사들에 구제금융법안 부결로 불확실성이 높아진 이번 주는 그야말로 '사느냐 죽느냐'를 결정하는 갈림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를 우리는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한국 금융시장 그리고 실물경제에는 어떤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인가?

한국 증시에서 외국인의 매도세가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금융회사들은 정부나 의회의 메시지를 전달받았으니, 이제 자구노력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달러를 필요로 할 것이고, 우선 수익률이 비교적 높고 자금 조달 능력이 있는 한국 시장에서 발을 빼려 들 것이다. 이는 달러화에 대한 수요 증가를 가져옴으로써 달러 대 원화의 환율이 계속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1,300원대도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이는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달러 품귀현상이 더욱 짙어질 것이란 데 근거를 두고 있다. 이 마당에 외평채 발행 연기를 했으니, 연말 달러 자금이 필요한 기업으로서는 현물시장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비싼 값에 달러를 조달해야 한다. 우리는 가산 금리 2.2%도 높다고 발행을 포기했지만 말레이시아는 2.73%에 5억7천900만달러를 발행했다. 한국경제가 나 홀로 시장이 아닌 다음에야 말레이시아가 왜 그리 했었는지 한번쯤은 생각해 보았어야 했다.

달러화 가치가 높아져서 환율이 오르는 게 아니라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시장 불안 때문이다. 불안 요소를 어떻게 잠재우는가가 정부와 외환당국의 과제다. 엔화와 스위스 프랑이 마치 달러화의 피난처인 양 가파르게 가치 상승이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은 외환보유고에서 달러화의 비중을 낮추고 유로화의 비중을 올리겠다고 한다. 한국은행은 어떻게 할 것인지가 궁금하다.

만약 세계 모든 주요국의 중앙은행이 외환보유고 비중에서 달러화 비중을 줄인다면 그야말로 세계 경제의 지각 변동은 불가피할 것이다. 일대 카오스가 예상된다.

하지만 원칙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외환보유액이 감소하기 때문에 정부가 달러를 계속 풀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전에 정부가 환율시장에 개입했다가 실패한 이후 신뢰가 깨졌다. 섣부른 개입이나 대책을 내놓아서 신뢰를 잃기보다 큰 흐름을 따라가면서 미세 조정을 하고 외환보유액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국제 금융시장 경색에 따른 유동성 문제와 환율급등 등은 미국발 금융위기와 맞물린 문제들로, 우리 자체적으로 해결할 성질이 아닌 만큼 정부는 시장의 불안심리를 잠재우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곽수종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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