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생각] 진지한 꿈 찾기 시간

입력 2008-09-30 06:00:00

유난히 공부에 욕심이 많았던 한 남자 후배가 자녀를 데리고 미국 동부를 여행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그곳까지 여행한 김에 주변의 '아이비리그' 대학들도 방문한 적이 있다.

내심 마음속으로는 자녀가 자라면서 어릴 적 봤던 고풍스런 학교 분위기와 학구적인 것들이 머릿속에 남아 혹시라도 더 큰 꿈을 꾸지나 않을까 해서다. 그는 학교들을 둘러본 뒤 자녀에게 물어봤다. "하버드가 좋아? MIT(매사추세츠공대)가 좋아?" 그러자 아이는 망설이지도 않고 "하버드대학이 더 좋아"라고 했단다. '옳거니, 자식. 애비의 마음을 잘 알고 있군'이라 생각하며 기특해 하고 있는데 갑자기 "왠지 알아? 하버드에는 다람쥐가 있고 MIT는 다람쥐가 없잖아"라고 해 웃은 적이 있다고 한다.

자식을 키우다 보면 자신이 꼭 하고 싶었는데 못 이룬 것이나 살아보니 더 좋은 것을 자녀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자식만은 자신이 경험한 고생을 하지 않고 안락한 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일 게다. 또 아빠나 엄마 직업과 같은 길을 걷게 하기 위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자녀들 중 개성이 뚜렷한 아이는 자라면서 하고 싶고 안하고 싶은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잘 듣는 편이다. 부모의 바람이 곧 자신의 꿈인 것으로 생각하고 자라게 되는 경우 말이다.

그러다 중·고등학생이 되고 성적에 따라 대학을 진학하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또는 '과연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내 꿈을 위한 길인가'라고 방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때 '진정 내 꿈은 이것이 아닌데' '내가 왜 이 길로 떠밀려오게 되었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등의 갈등을 겪게 된다. 다행히 그 상황을 잘 극복해 본인이 원하는 꿈을 향해 매진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아닐 경우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라면 우선적으로 자녀들에게 진정으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것을 평생 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며 살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찾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국제중에 보낼 것인지, 특목고에 보낼 것인지 부모가 먼저 결정하기 전에 아이에게 스스로 진지하게 자신의 꿈을 찾는 시간을 가져보게 하는 방법을 권하고 싶다.

초등학생 조카 녀석은 하고 싶은 게 아주 많지만 이제 막 중학교 입학을 앞둔 시점이라 시간이 늘 부족하다고 한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냥 평범하게 하루종일, 1년 내내 곤충만 만지고 돌보며 살 수 있는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다고도 한다. 조카의 꿈은 곤충학자다. 곤충만 보고 있으면 더없이 즐거워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고 한다.

하지만 공부 좀 한다는 자녀의 다른 엄마들처럼 '우리 아이가 정말 영재일까, 아닐까'가 궁금해 영재 공부를 한창 시키던 아이 엄마는 우연히 한 대학기관이 주관하는 영어캠프를 신청했다. 홈페이지에서 'KAIST 과학자들과 함께하는 글로벌 리더를 꿈꾸는 특별한 캠프-글로벌 리더는 나다'라는 문구를 보고서 말이다. 영어로 수업하고 전국 단위에서 모이고 KAIST 대학교수들도 참가하는 것이면 아주 좋을 것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캠프에 참가하면서 지도하던 교수 한 분이 귀담아 들을 만한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했다. 뛰어난 성적을 나타내던 어떤 학생이 학교에 들어와서는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자기 스스로 정한 진로가 아니고 어릴 때부터 공부 잘하는 수재라 아무 어려움 없이 진학한 경우에 열의도 식고 흥미를 잃는 경향이 가끔 있다면서.

이번 가을에는 언제나 지치지 않고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는 나의 꿈, 나의 미래는 어떤 그림일지 한번 그려 보는 것은 어떨까. "힘들다"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다니던 조카 녀석은 추석에 만났더니 점잖은 한마디를 했다. "이모, 꿈이 있으면 현재는 힘들어도 얼마든지 견딜 수 있어요. 이모도 꿈을 가지고 노력해보세요. 역량이 있잖아요"라고. 그러면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조카 녀석, 꿈 찾기 캠프에서 부쩍 큰 것 같군."

아이들에게 문득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네 꿈이 무엇이냐?"

정명희(민족사관고 1학년 송민재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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