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경대 MC학과 교수 된 방송인 남희석

입력 2008-09-27 06:00:00

"하늘의 별도 따봤다, 이젠 스테디셀러로 남고 싶다"

남희석(37)은 능청스럽다. 안달하지도 않고, 말도 느리다. 하지만 그는 여우다. 뭉개고 눙치는 그의 언변은 평범한 이웃들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방송을 모르는' 이웃들이 던지는 '비방송용' 말투와 당황스러운 행동들이 그를 만나면 반질반질 윤이 난다. 누구라도 허허 웃다가 속내를 내비치게 만들 사람이다.

그가 데뷔한 지 벌써 17년이 됐다. 긴 시간만큼 부침도 심했다. 7년의 무명시절을 거쳐 최강의 입담꾼 MC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고, 입이 돌아가는 치명적인 병으로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인기도 'L'자형으로 끝날 것 같던 어느 순간, 그는 다시 대중 앞에 예의 '하회탈' 웃음을 지으며 허허거리고 있다. 대경대 MC학과 전임 교수로 임용된 그를 25일 서울에서 만났다. 남희석은 약속 시간보다 20분이나 일찍 도착해 기자를 당황하게 했다. 인터뷰 도중, 그는 자신을 아는 체하는 이들에게 일일이 인사로 답했다. 담배도 연방 물었다. 기자의 담배였다. 아깝진 않았다.

◆MC는 신호등

-내년부터 대경대 MC학과 전임교수로 일하신다고요?

"제가 교수의 꿈을 꾸었거나 교육에 대한 사명감이 큰 건 아니었어요. 수업 준비를 하면서 공부가 될 것 같았어요. 또 '저처럼 발음 안 되고 말도 느리고,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도 살아남았으니 여러분도 가능성이 있습니다'고 말해줄 수도 있겠죠. 교수직은 사실 경제적으로 손해예요. 그렇지만 MC학과는 처음 생기는 전공이라 매력이 있고요."

-대구와 인연이 있나요?

"자주 내려가는 편이에요. 친한 지인도 있고, 제가 막창을 굉장히 좋아해요. 대구는 굉장히 재미있는 도시예요. 밖에서는 권위, 고집, 기득권 이런 이미지인데, 대구 사람들은 스스로를 의리, 보수, 자존심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고향인 충청도와는 너무 상반된 도시인 것 같고요. 대구는 뜨겁고 열정이 많은 도시, 한번 연을 맺으면 목숨 걸고 가는 도시라고 생각해요."

-'미녀들의 수다'는 악플이나 비난에 시달리기로 유명하죠?

'미녀들의 수다'를 하면서 참 희한한 일을 경험했어요. 한국말을 더듬는 외국인과 4시간 동안 녹화를 하면 방송이 60분 나가요. 그러면 흐름이 뚝뚝 끊기잖아요. 몇몇 네티즌들이 그걸 두고 '진행을 왜 저렇게 하냐'는 비난을 홈페이지에 올렸어요. 그걸 두고 인터넷 매체에서 '남희석 진행 미숙'이라고 딱 걸더라고요. 처음에는 반성을 했는데 너무 심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요즘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 웃음코드를 따라가기가 힘들거든요. 신랄한 사회 풍자나 블랙 코미디도 거의 사라진 것 같고.

"대학로 공연장에서 개그를 먼저 테스트하고 나오다보니까 자꾸 젊은 친구들 위주로 가는 것 같아요. 코미디언의 입이 닫혀있는 것도 굉장히 문제라고 봐요. 김형곤 이후로 섹스와 정치와 문화의 이야기는 자취를 감췄어요. 코미디는 세상에 대한 약간의 오만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비아냥거릴 수도 있고, 비판도 할 수 있죠."

◆외국인을 보는 이중잣대가 싫다

-외국인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을 여럿 맡고 있는 이유가 뭡니까?

"제가 외국어는 못 해도 외국인의 어이없는 한국어를 잘 알아듣는 능력이 있어요. '생선 혐시해요?'라고 하면 '선생님 시험봐요?'라고 알아듣는 식이죠. 한국인들이 유럽인이나 미국인과 아시아인을 대할 때 태도가 완전히 달라요. 이중잣대잖아요. 외국인 며느리들도 '돈 보고 팔려왔다'는 식으로 보고. 대학에서 영어강사로 일하면 존중받고 시집 온 다음날부터 깻잎 농사 짓고 밭일하는 사람은 대우를 못받고. 그건 아니잖아요."

-'미녀들의 수다'가 성 상품화나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깨끗하고 예쁜 여성 위주로 흘러가는 게 아쉽죠. 사실 미수다는 태생부터 달라요. 철저하게 예능국에서 만든 '재밌자' 프로예요. 결국 시청률이에요. 시청률 안 나오면 3주 후에 미수다 없어져요. 예전에 자밀라가 나왔을 때 그렇게 비난이 많았지만 시청률이 4%가 뛰었어요. 제작진도 고민이죠. 수많은 비난을 등에 꽂고 막 달려가니까. 그래도 프로그램의 색깔 자체를 흔들 때는 자를 수밖에 없어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사회 활동을 계획하는 건 없으세요?

"외국인 노동자 홍보대사를 하면서 얼마나 협박 메일을 많이 받았는지…. 우리나라에도 외국인 혐오주의자가 많아요. '네가 파키스탄인에게 강간당한 여중생을 알아?' '네 딸이 당해봐야 너는 알겠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메일을 많이 받았어요. 나서기에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해요."

◆나는 독립군 스타일

-요즘 예능프로그램의 추세가 리얼버라이어티에 집단 MC인데, 그 방면으로는 안 하시는 것 같습니다.

"혼자 다니는 게 체질에 맞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일반인과 만나는 리얼버라이어티를 원없이 해봤어요. 예전에 '비교체험 극과 극'이나 '남희석 이휘재의 멋진 만남'이 있었고 SBS '사돈 처음 뵙겠습니다'를 8개월 동안 했는데요. 예측 못하는 변수가 정말 많거든요. 돌발 상황에 대응하는 게 재미있어요. 제가 전유성, 최양락, 서세원 선배와 기타노 다케시를 정말 좋아하는데 이 분들의 스타일도 '독립군'이에요."

-방송 프로그램 수에 비해서 별로 튀지 않는 것 같은데요?

"제가 '남희석 최은경의 여유만만', '미녀들의 수다', '노래가 좋다'를 하고 있고, MBC '나는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를 맡을 예정인데요. 튀지 않는 게 오히려 편하고 좋은 것 같아요. 제가 하늘의 별도 따봤잖아요. 그런데 몸이 아프고 나서 손을 펴보니까 다 '재'인거예요. 그러면서 이 직업을 오래할 수 있는 길이 뭔가도 생각을 해보게 되고, 진짜 내가 즐길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도 했어요. MBC '꼭 한번 만나고 싶다'를 4년 동안 하면서 이제는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하다. 아이가 커가면서 학교에서 놀림받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하지만 이제는 웃기는 데 힘을 더 주려고 굉장히 고민하고 있어요. 웃길 프로젝트가 하나 있는데요. 조만간에 시도할 건데 아직 보안이에요. 먼저 말로 뱉으면 잘 안 이뤄지더라고요."

◆대인관계? 대뜸 전화하기가 비결

-휴대폰에 저장된 전화번호가 몇개나 됩니까?

"999개에요. 하루에 6개씩 지워요. 1년 동안 연락없다가 결혼식 오라든가, 명절 단체 문자를 보낸다거나 하면 지우죠. 제가 술을 좋아하고 '꼬장'을 부리지 않아서 인간관계가 유지되는것 같아요. 그래도 너무 소모적인 인간 관계가 많으니까 피곤하죠. 아내도 별로 안 좋아하고. 그래도 누가 보자고 하면 거절을 잘 못 해요."

-틈틈이 책을 많이 보신다면서요?

"그게 참 포장이 잘 됐어요. 전유성씨가 가르쳐준 방법인데요. 베스트셀러 중에 8~9위 책을 무조건 사요. 남들이 베스트셀러 1위를 얘기할 때 8위권을 얘기하면 굉장히 있어보이잖아요. 대신 저는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 출판사에 전화해서 작가분을 만나요. 최근에는 '여관'을 쓰신 한차연 작가님을 만났어요.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렇게 냉큼 전화를 하세요?

"예. 그런 편이죠. 제 직업이 좋아서 그런지 대부분 만나주세요. 얼마전에는 TV 인터뷰를 보다가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 나오셨기에 전화를 했어요. 여당만 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송영길 민주당 의원에게도 전화를 하고. 재밌잖아요. 만화가 박광수씨도 그렇게 만났어요. 하루는 둘이 소주를 마시는데 한 여자분이 제게 사인을 받으러 오더라고요. 그래서 박광수씨에게 '미안하지만 저분 전화번호 좀 따주세요.' 그렇게 만나서 결혼한 게 지금 아내예요."

◆5년 뒤에는 소설을 쓰겠다

-개그맨이 안 됐다면 뭘 하고 있을까요?

"만약 다른 일을 했다면 광고 관련 직업이나 구성작가를 했을 것 같아요. 소설을 쓰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유치원 아빠 모임에서 만난 소설가 김탁환씨와 일본 여행을 갔다가 소설의 매력에 깊게 빠진 거예요. 그래서 5년 안에 소설을 쓰겠다고 다짐을 했어요. 요즘 연구하는 분야가 '욕'이에요. 판소리를 들어보면 재밌고 맛깔나는 욕이 되게 많아요. 욕은 우리 생활 깊숙히 있는 거잖아요."

-방송과 생활에서 본인이 지켜나가고자 하는 원칙이 있습니까?

"제가 살면서 써 먹는 하나는 '목마른 놈이 우물 파라'예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기다리지 말고 하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칼자루를 누가 쥐었냐'예요. 누가 칼자루를 쥐고 있는지 잘 생각해서 살아야 한다는 거죠. 제가 변화하고 그런걸 좋아하지 않아요. 스타일리스트의 가장 큰 불만이 제가 같은 옷을 또 사는 거예요. 저는 뭘 입을까 고민하는 게 싫거든요. 옷장에도 옷이 2, 3벌밖에 없어요. 방송할 때 옷을 빌려주는데 옷을 왜 사요."

-10년 뒤에 남희석은 뭘 하고 있을까요?

"코미디언이 해야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연예인 직업은 줄타기예요. 전날 마신 술이 덜깨서 운전하다가 음주운전이 될 수도 있고, 술자리에서 괜히 옆사람과 시비가 붙을 수도 있어요. 학생들이 게으른 교수라고 욕할 수도 있고요. 한 방에 모든 게 무너질 수 있거든요. 진심으로 그런 사고가 안 나도록 굉장히 조심할 거예요."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프리랜서 장기훈 zkhaniel@hotmail.com

▦남희석은 누구?=1971년 충남 보령 출생. 그가 브라운관에 처음 얼굴을 내밀었던 건 1989년 '자니윤쑈' 였다. 안양예고 3학년이던 그는 어린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능청스레 자니윤의 흉내를 내면서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7년 간의 무명을 거쳐 '멋진 만남', '좋은 친구들' 등 예능프로그램에서 독특한 말장난 개그를 선보이며 국민 개그맨 시절을 보냈다. 2002년 구안와사로 방송활동을 중단한 뒤 심기일전, 내용있는 예능 프로그램의 MC로 변신해 재기했다. 대경대 MC학과 전임교수로 내년부터 강의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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