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어떤 애국자

입력 2008-09-24 11:10:37

1923년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예술품 경매장인 경성미술구락부는 일제 강점기 때 뛰어난 우리 문화재들이 일본인의 손에 헐값에 넘어가는 공식 창구였다. 1936년 11월, 세인들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의 경매가 벌어졌다. 국화 문양이 양각된 청화백자 호리병을 놓고 일인 골동품상과 전형필이 벌인 자존심 대결이었다. 그 골동품상은 막판 1만4천550원까지 불렀으나 전형필이 30원을 더해 낙찰자로 결정됐다. 이것이 지금의 국보 294호인 청화백자철사진사국화문병이다. 당시 서울의 큰 기와집 여러 채 값을 치르고 잡은 것이었다.

澗松(간송) 전형필(1906~1962)은 10만 석에 달하는 당대 최고 부자 중 하나였다. 배오개로 불린 서울 종로 4가의 상권을 거머쥔 거상 집안에서 태어나 어른들이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다. 그는 그 많은 재산을 일인들이 거저 줍듯 일본으로 빼내가는 우리 문화재를 이 땅에 붙들어두는 데 아낌없이 썼다. 무지렁이들은 '황해도의 금싸라기 전답 팔아 쓸모없는 사기대접을 산다'고 험담했다. 그러나 간송은 우리 민족의 정신적 유산인 문화재를 지키는 게 민족혼을 지키는 일이라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문화재는 아무리 비싼 값을 치르고서라도 반드시 손에 넣고 말겠다는 간송의 의지는 문화재 보금자리 마련으로 이어졌다. 1938년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에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을 지어 보화각이라고 이름했다. 지금의 서울시 성북동에 있는 간송미술관이다. 올해로 꼭 70년이 됐다.

제대로 돈 쓸 줄 안다는 평판을 듣고 있는 가수 김장훈이 최근 경매를 통해 독도가 우리 땅임을 입증하는 일본 고지도 2점을 구입해 박물관에 기증할 예정이란다. 김장훈은 얼마 전 뉴욕타임스 독도 광고에 거금을 쾌척하는가 하면 현재 독도를 테마로 한 국제논문페스티벌도 기획 중이다. 독도에 대한 남다른 그의 마음가짐은 70년 전 간송이 문화재에 쏟은 애정과 다르지 않다. 소중한 것, 필요한 것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애국정신이다. 속담에 '생각이 팔자'라고 무슨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 팔자가 정해진다고 한다. 간송이나 김장훈이나 후회 없이 값지게 돈을 쓴 이들이기에 '산 호랑이 눈썹도 그리울 게 없는(세상 부러울 게 없는)' 사람들이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