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검에 딱걸린 사기범…지검 3차례 무혐의 처분 뒤집어

입력 2008-09-24 09:50:39

직접 구속 기소 '이례적'

지방검찰청 수사에서 세차례나 무혐의 처분됐던 사기 사건 피의자가 고등검찰청의 보강 수사에서 범죄행위가 드러나 구속 기소됐다.

이번 사건은 최근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재정신청이 전면 확대되는 등 수사 환경이 크게 변함에 따라 법원으로 사건이 넘어가기 전 최종단계를 담당하는 고검의 역할이 크게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검이 수사한 내용을 상급기관인 고검이 뒤집은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구고검은 23일 채권담보로 맡긴 가(假)등기를 넘겨주면 공사대금을 즉시 갚겠다고 속인뒤 가등기만 넘겨받고 돈은 갚지 않은 혐의로 J(56)씨에 대해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경북의 한 대형목욕장 업주인 J씨는 2006년 3월 A씨에게 20여억원짜리 목욕장 실내인테리어 공사를 맡기면서 공사금 채권 담보를 위해 목욕장 부지 3필지의 매매예약 가등기를 해줬다.

J씨는 그러나 공사를 시작한지 몇개월도 안돼 자금난으로 A씨에게 계약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고 미지급공사금이 발생하자, 사채업자인 B씨에게 목욕장 부지를 담보로 14억원의 돈을 빌려줄 것을 제의해 합의했다. 그러나 B씨가 선순위 가등기가 말소되거나 자신에게 양도돼야 돈을 빌려주겠다며 조건을 내건 반면 A씨 측에서는 미지급 공사대금 채권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등기를 양도·포기할 수 없다고 나서자 일이 틀어졌다.

이에 J씨는 2006년 10월 13일 한 법무사 사무실에서 "실내 인테리어 공사대금 담보로 준 가등기를 B씨에게 양도해 달라. B씨로부터 돈을 빌려 공사대금 일부를 갚고 15억원의 공사대금이 결제되기 전에는 본등기를 하지 않겠다"고 A씨를 속이고 가등기를 넘겨받았다.

그러나 이후 J씨는 B씨로부터 실제 빌린 14억원 중 1억원만 A씨에게 준 상태에서 B씨 앞으로 본등기를 완료해 줌으로써 A씨가 가지고 있던 후순위 저당권 등기를 자동소멸케 해 14억원 상당의 손실을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이 사건을 고소사건으로 접수, J씨를 조사했으나 범죄 혐의를 밝혀내지 못해 3차례나 무혐의 결정을 반복했다.

고검은 이후 A씨로부터 항고를 접수해 지검 수사의 맹점을 발견하고 법적 쟁점사항을 재정리, 심층수사를 벌인 끝에 J씨의 교묘한 사기범행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구고검 관계자는 "고검에서 피의자를 직접 구속 기소한 사례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 재정신청(裁定申請)은 검사가 고소·고발사건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렸을 때 고소·고발인이 그 결정의 옳고 그름을 묻기 위해 고등법원에 제기하는 고소를 의미한다.

항고(抗告)는 자신의 고소·고발을 처리하는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이의가 있는 고소·고발인이 관할 고등검찰청장에게 재심을 요구하는 것이며,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검찰의 최고책임자인 검찰총장에게 하는 재심요구를 재항고(再抗告)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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