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진정한 피해자는 누구일까

입력 2008-09-22 09:04:31

5년 전, 어느 평범했던 한 여인이 하루아침에 살인자가 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남편의 도박빚으로 인한 경제적인 학대와 목숨을 위협받는 심각한 폭력에 20년 동안 시달린 전형적인 가정폭력 피해 사건이었다. 사건 당일도 남편이 3일 동안 온갖 흉기로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위협하여 견디다 못한 부인이 남편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하였다. 피해자의 언니가 여성의전화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면서, 피해자를 상담하고 피해자 석방을 위한 구명운동을 전개하였다.

가정폭력 피해자에서 남편 살인혐의로 가해자가 되어 버린 그 여성은 바로 우리네 평범한 이웃이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하루하루 눈물로, 한으로 버티며 살아왔을 부인을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게 5년이 지난 이달 중순에 그 사건의 피해자 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사건을 지원해 준 여성의전화에 항상 고마운 마음이 있었는데 사는 것이 바빠 잊고 지내다 이제서야 연락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던 동생은 5개월의 실형을 살다가 집행유예로 나온 후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하였다.

언니는 이제부터 회원활동을 하고, 여성운동에 동참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 가슴이 뭉클하였다. 남편이 가정폭력으로 인해 부인을 죽이게 되면 과실치사가 되며, 부인이 남편에게 평생을 맞고 지내다 목숨의 위협을 느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남편을 죽이게 되면 살인이 된다. 위와 같은 사건이 만약 부부관계가 아니었다면 정당방위는 물론 민·형사상 소송도 가능할 것이다.

아프리카의 어느 한 마을에서는 20년 동안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죽인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부인을 단지 2시간만 감옥에 넣은 후에 석방하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궁금히 여겨 물어보니 "부인은 지난 20년 동안 감옥에 수감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단지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2시간 동안은 벌을 내리는 것"이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가정폭력방지법이 생기면 가정폭력이 줄어들 것이며, 가정폭력상담소와 쉼터가 많아지면 더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면서 여성운동을 해왔다. 그러나 가정폭력 사건은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가정폭력의 피해 자녀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사건도 이제는 놀랍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을 명쾌하게 그려낸 위의 판결을 우리 사회도 함께 공감해 나갈 수만 있다면 아직 늦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부터 가정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도록 노력을 기울이기를, 사법부도 진정한 피해자를 이해하는 올바른 판결을 내리기를 기대해 본다.

조윤숙 대구여성의전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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