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부처님이 물고기 한 마리를 원하실까

입력 2008-09-16 06:00:00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라는 장을 마련하고 불교계에 정중한 사과를 했다. 사과로는 취임 6개월 만에 세 번째의 일이다. 그동안 정부가 특정 종교에 편향적으로 대했고 또한 핍박했다는 佛子(불자)들의 항의에 부닥친 것이다. 쇠고기 파동을 가까스로 넘기고 9월 경제 위기설도 극복하고 있는 이즈음 또 한 번 사과를 해야 하는 대통령의 심정도 말이 아닐 것이다. 촛불시위 과정에서 조계종은 蘇塗(소도)정치를 구사했고 정부는 이를 불법 행위로 간주하던 상황인데 일은 거꾸로 되어 정부가 불법을 저질렀다고 사과까지 하게 되었으니 누구 같았으면 "대통령 해먹기 힘들다"고 막말을 했을 법도 하다. 그럼에도 아래 사람의 잘못을 대신하여 사과하고 사태를 수습하자는 대통령의 판단을 보면 이명박 대통령 특유의 리더십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대통령의 귀중한 사과는 불자들에게 먹혀들지 않았다.어청수 경찰정장이 지난 10일 대구 동화사에서 열린 '헌법파괴종교편향종식을 위한 대구경북지역 불교대표자 간담회에 예고없이 찾아왔다가 스님과 신도등과 몸싸움까지 벌이는 헤프닝까지 빚어졌다. 사과 하기위해 대웅전 앞마당에서 지관스님을 만났으나 악수만 하고 제대로 이야기 조차 하지 못한채 허탈한 모습으로 다시 서울로 돌아 갈 수 밖에 없었다. 불교계는 오히려 ▲어청수 경찰청장 파면 ▲종교차별을 근절할 입법 조치 ▲촛불시위 관련자 수배해제등 국민 화합조치등 3대 요구가 모두 받아들여 지지않을 경우 범불교도 대회를 강행한다고 밝혀 조금도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있다.

진정성이 있는지 논의해 보고 사과를 받을지 말지를 결정하겠다는 고자세에 부닥친 것이다. 하기는 어청수 경찰청장을 감싸고 도는 이명박 대통령의 태도는 비록 그가 거리의 촛불시위를 진정시킨 일등 공신이라 하더라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지난 정권에서 잘못한 일은 엄청난 폭으로 사면하면서도 현안의 문제는 끝까지 문제 삼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상대가 있는 문제에서 끝까지 항복을 받기보다는 타협으로 일을 처리하는 기술이 있어야 민주 정치가 가능한 것이다. 쇠고기 파동에서 빚어진 일은 이 정도에서 타협점을 마련하는 것이 與(여)이고 野(야)이고 좋을 것이다. 어청수를 영웅으로 만든다고 그를 피해 다니는 촛불 주동자들이 그냥 지하로 들어가겠는가?

여기서 잠깐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검토해보자. 우리나라에 다음과 같은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면 어디일까? "조금 살 만하면 한없이 폼 잡고, 부정에는 예사롭고, 약한 자나 실패한 자와는 친구하기도 꺼리고, 자신의 성공은 당연히 자신의 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집단"말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한국의 집권정당이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모임인 정당을 그래도 믿는 이유는 그 정당이 잘나서도 아니며 탁월해서도 아니다. 다만 과거에 다른 것을 기대하는 국민들의 염원과 판단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조금 살만하다고 폼 잡을 때가 아니며 서울시 의회에서 빚어진 부정을 예사롭게 넘기고자 하는데 그것이야말로 당 차원에서 고두사죄해야 할 일이다. 그래도 뭔가 잘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환상을 그리고 있다면 그들에게 내일은 없을 것이다.

지관 스님은 '불교의 최고덕복은 자비지만 자비와 반대되는 부분이 필요하다면 사용할 수 있어야한다' 하면서 호법정신을 갖고 부드러운 중생은 자비로 대하고 강한 중생은 절복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런 말씀을 듣고

진정 부처님이 인간에게 사과를 요구했을까 라는 순진한 질문을 던져본다. 부처님은 물고기 한 마리가 탐나서 제물로 바치라 하셨을까? 종교직은 현대사회에서 서비스직으로 분류된다. 인간의 진정한 가치와 생명가치에 봉사하는 서비스직이란 말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시정잡배들의 싸움같이 네 잘못 내 잘못을 따지는 일에 팔을 걷어붙이고 뙤약볕을 마다하지 않은 불자들의 분노가 진정성을 지니려면 물고기 한 마리에 연연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대통령의 사과가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닐 것이다. 한국에 있는 여러 종교의 맏형격인 불교가 모처럼 義憤(의분)을 보인 요즈음 우리의 문화가 지닌 전통적 가치가 흔들리지나 않을까 심히 두려운 생각이 든다. 그러나 맏이는 맏이 노릇을 할 것으로 막연히 기대를 걸어본다.

유명우 한국번역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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