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르네상스] ④日 오사카 구로몬시장
"고객이 편해야 시장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한국보다 앞서 백화점과 대형소매점이 재래시장과 골목시장 상권을 장악한 일본. 한국의 재래시장이 1990년대 이후 '쇠락의 길'을 걸어왔지만 일본의 시장들은 이미 70, 80년대부터 자본을 앞세운 대형 유통업체들에 소매상권의 상당부분을 내주며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러나 21세기 일본의 전통시장은 그들만의 경쟁력을 무기로 떠나간 고객들 발길을 다시 돌리고 있다. 30여년간의 생존경쟁을 거치면서 전통은 살리되 편리함을 추구하는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노하우를 개발한 덕택이다.
◆할인점보다 물건 사기가 좋아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 초에 찾은 일본 오사카의 구로몬 시장. 일본 최대 번화가 중 하나로 꼽히는 도톤보리 인근에 위치한 구로몬 시장은 동서남북의 십자 형태로 상가가 자리 잡고 있으며 총연장 500m의 길을 사이에 두고 생선류와 야채, 과일 등을 취급하는 180여개 상점들이 밀집해 있다.
35℃를 넘는 무더위에 휴가철까지 겹치면서 비수기에 접어들었지만 구로몬 시장은 방문객이 줄을 이으며 활기로 넘쳐 있었다.
생선가게를 운영하며 상인조합 간부를 맡고 있는 야마모토 히카오(56)씨는 "요즘은 하루 쇼핑객이 1만여명을 밑돌지만 겨울철 성수기가 되면 2만명까지 시장을 찾는다"며 "90년대까지는 고객이 계속 감소했지만 최근에는 꾸준한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고객감소로 점포들이 하나둘 빠지면서 시장 규모가 나날이 축소되고 있는 한국의 재래시장처럼 한때는 구로몬 시장도 문닫는 가게가 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시장을 살리기 위한 상인과 오사카시의 수십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으면서 1820년대에 생긴 구로몬 시장은 옛 명성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구로몬 시장이 떠나가는 고객을 잡기 위해 우선 시작한 것은 시장 현대화 작업. 여름철과 비 오는 날 고객 편의를 위해 이미 30년 전 천막으로 된 아케이드를 설치했고 2004년에는 환기와 조명을 갖춘 현대식 아케이드로 교체했다. 이에 따라 바다를 접한 오사카 특유의 습한 여름철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시장 내 온도는 바깥보다 3~4도가 낮아 거의 더위를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또 바닥에는 대리석을 깔고 4m 정도의 동선을 확보했다.
자전거가 보편적인 대중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일본에서 넓어진 시장 통로는 자전거 쇼핑을 가능하게 했고 이는 할인점이나 백화점보다 오히려 뛰어난 접근성을 갖게 했다.
히카오씨는 "아케이드 설치 후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은 시원해 고객들의 불편이 상당부분 사라졌다. 고객 중 20~30%는 자전거를 타면서 쇼핑을 즐긴다"며 "시장 내 점포들도 시설을 현대화하고 청결을 유지해 예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시장 내부가 깨끗하다"고 설명했다.
◆고객의 신뢰를 잡아라
구로몬 시장의 생존 비결은 '양'이 아니라 '질'이다.
믿을 수 있는 상품을 제 가격에 팔겠다는 전략. 실제 재래시장이면서도 정찰제를 고수하고 있으며 점포마다 모든 상품을 깨끗하게 소포장해, 주변 백화점이나 대형소매점과 당당한 경쟁을 펴고 있다.
또 대다수 상점들이 3, 4대를 이어 오며 철저한 단골관리를 하고 있는 점도 구로몬 시장의 빼놓을 수 없는 경쟁력 중 하나.
180여 상점 대부분이 200여명에서 많게는 2천명까지 단골 리스트를 갖고 할인점보다 나은 배달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단골 중 절반 이상이 대를 이어 또다시 시장을 찾고 있다.
다양한 고객행사도 연중 실시하고 있다.
시장을 찾은 이토 가즈오씨는 "매주 한두차례 아내와 함께 구로몬 시장을 찾아 반찬을 사고 있다"며 "시장을 찾는 대다수 사람들이 구매하는 제품의 질과 가격에 신뢰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조합에서 상점별 할인쿠폰을 모은 전단을 발행해 매주 토요일이면 시장 내 대부분 가게들이 참여하는 5~10% 할인행사를 갖고 있으며 상품구입에 따른 포인트 적립, 야시장 행사 등을 갖고 있다. 또 계절별로 '생선의 날'이나 '과일의 날' 등을 정해 파격적인 할인행사를 개최하는 등 연중 다양한 이벤트를 열어 고객의 발길을 시장으로 모으고 있다.
상인조합의 데미즈 군지 사무장은 "시장 활성화를 위한 각종 행사에는 전체 상인들의 자발적인 동참이 가장 필수적"이라며 "시장 내 상인들 모두가 각종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행사 진행과 시장 관리를 위해 상인들 투표로 30여명의 임원들을 뽑아 시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임원들은 홍보지 제작과 홈페이지 관리를 하는 정보위원회, 축제를 관장하는 복리환경위원회, 교통 혼잡이나 화재 방지를 담당하는 교통위원회, 활성화연구회 등 분야별 소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재래시장의 경쟁력 확보에는 지자체의 지원도 한몫을 하고 있다.
오사카시는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시장 전문가를 파견하는 한편 재래시장 시설 정비를 위한 경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상점 경쟁력 확보를 위해 상인을 대상으로 한 각종 교육프로그램을 특화 운영하고 있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 시장 지도·할인쿠폰…日 재래시장의 서비스 눈길
"재래시장이 복잡하다고요?"
일본의 재래시장은 시설현대화 작업을 거치면서 통로를 넓게 만들고 간판을 정비, 처음 시장을 찾더라도 누구나 쉽게 쇼핑을 할 수 있다.
만약 발품을 팔아 원하는 점포를 찾는 데 불편을 느낀다면 시장 초입에 있는 아무 점포에나 들어가 '시장 지도'를 달라고 하면 된다. 여기에는 시장내 점포 위치와 전화번호, 취급 물품 등이 한 장의 지도 앞뒤로 꼼꼼히 적혀 있다.
대다수 재래시장이 10여년 전부터 지자체 등의 도움을 받아 이러한 시장 지도를 만들어 방문객들에게 배포하고 있는데, 시장 정보가 담긴 지도 한 장만 있으면 굳이 시장을 찾지 않더라도 전화로 택배 주문이 가능하다.
재래시장별로 만들어 배포하는 '할인쿠폰'도 일본 시장을 찾는 즐거움을 더해주는 항목 중 하나.
상인조합이나 연합회에서 점포별 할인쿠폰을 모아 전단 형태로 제작하고 있으며 날짜별, 시간별 깜짝 세일에 대한 정보 등이 담겨 있다. 한국과 달리 가격 정찰제가 정착된 일본 재래시장에서 할인쿠폰은 대형소매점과 경쟁해 고객을 모으는 훌륭한 홍보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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