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행복할 자신 있으면 이혼하라…'TV로펌 솔로몬' 김병준 변호사

입력 2008-09-06 06:00:00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하다. 정말 그럴까? 평생 경찰서 문 앞에도 가본 일이 없이 평범하게 살아온 소시민에게 법은 냉정하고 차가우며 도통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용어는 어렵고, 절차는 복잡하다. 일상의 모든 것이 법과 관련이 돼 있지만 막상 갈등에 부닥치면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김병준 변호사는 방송을 통해 소시민들의 두려움을 조금씩 줄여준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에 툭툭 내던지는 말투 속에도 해법이 담겨있다.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인근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꽤 피곤해 보였다. "어제 20년 만에 처음으로 축구를 한데다 잠을 못잤더니 피곤하네요." 그는 별다른 설명없이 10여분 간 자신의 일을 계속했다. "인터뷰도 같은 얘기를 매번 반복하려니 힘드네요. 반복되는 질문은 질문지를 주시고, 추가되는 것만 인터뷰를 합시다." 그러자고 했다.

◆나는 방황하던 별

-일찍 대구로 유학을 오셨는데 학창 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습니까?

"중학교까지는 착실한 모범생이었는데 고교 시절은 방황의 연속이었죠. 술, 담배를 배웠고 주말이면 중화반점에서 짬뽕 국물에 고량주를 마시기도 했습니다. 고1때 첫사랑을 만났는데 만난 지 몇달만에 '우린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 대학입시를 위해 공부를 해야한다'는 이유로 이별의 아픔을 겪기도 했죠. 그러다보니 성적이 1학년 1학기때는 반에서 62명 중 10등이었는데 2학기에 29등으로 떨어졌고, 2학년 2학기에는 41등까지 떨어졌어요."

-왜 법조인이 돼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까?

"'적성'(적당한 성적에 따라)에 따라 계명대 사회학과 81학번으로 입학을 했어요. 대학에 간 후에도 출근은 다방으로, 퇴근은 당구장에서 했죠. 그러다 고민 끝에 '행복하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법조인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대 후에 법대에 합격을 했는데 집안 사정 상 포기했고, 학비부터 벌자싶어 1988년에 한국통신에 입사했습니다."

-잘나가는 공기업을 그만 둔 이유가 뭐였습니까?

"동생이 제대를 하자마자 백혈병 진단을 받고 6개월 간 투병 생활 끝에 생을 마감했어요. 불행은 겹쳐서 온다더니 아버지도 이듬해 세상을 등졌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나니까 정신적으로도 공허했고 삶의 의욕도 없더군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회사에 사표를 내고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갔어요. 그러다가 성균관대 법대 편입학 시험을 쳐서 3학년에 편입을 했고요. 그렇게 고시공부를 시작한 지 6년만인 1997년 35세에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좀 손해보고 살자

-SBS '솔로몬의 선택'으로 많이 알려지게 됐는데 출연한 계기가 뭐였습니까?

"고 1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있는데요. 고교 동문회에서 만나보니 이 친구가 방송국 PD가 됐더라고요. 그러면서 자신이 기획한 프로그램에 변호사 4명이 필요하다며 출연해달래요. 법률적인 이야기를 하고 친구들과 대화하듯이 툭툭 재미있는 말을 던졌죠. 처음에는 법률 견해는 편집되고 농담만 방송돼서 마음 고생을 많이 했어요."

-'법대로 하자'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요. 사람들과 법적인 갈등을 겪을 때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요?

"조금 손해보고 살면 돼요. 법대로 해서 자신의 권리를 다 찾으려다간 오히려 비용이 더 들어갑니다. 조금 양보하며 사는 게 나아요. 법과 정의가 지켜져야 하지만 법에 규정했다고 해서 꼭 정의라고 볼 수는 없거든요."

-법은 규정돼 있으면서도 해석에 따라 판결도 확 달라지잖아요? 방송에서 보면 정서를 중시하는 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던데 일부러 그러시는 건가요?

"명확한 법 조문은 없어요. 다 애매해요. 그래서 저는 상담할 때도 절대 '이긴다', '진다' 말을 안 합니다. 물론 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는 해주죠. 그런데 의뢰인들은 자기가 이기는지, 지는지에 대한 답을 듣고 싶어한다고. 그건 신이 아닌 이상 못 해요. 제가 내는 의견이 소수 의견으로 비칠 수 있지만 다른 변호사들도 틀릴 수 있어요. 법정에 가면 모르는 거예요. 물론 방송을 위해서 소수 의견을 내는 경우도 있죠."

◆변호사의 소양에 대해

-변호사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가 그렇게 좋지는 안잖아요? 수임료를 과다하게 받는다거나 법 지식을 이용해 탈세를 한다는 말도 있고.

"변호사는 도둑놈들이라고 그러는데 사기꾼에게는 수십억원씩 피해를 입고도 사건 의뢰할때는 수임료를 안 주려고 해요. 수임료를 제대로 주면 왜 탈세를 합니까. 그 나라의 법률 문화 수준이 선진국을 말합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후진적이에요. 나는 상담료 받아요. 그런데 대부분 상담료를 안 내려고 해요. 변호사도 수입의 편차가 크잖아요? 그러다보면 의뢰인에게 거짓말로 돈을 요구하거나 무리하게 사건을 유치하려는 사람도 있죠."

-어떤 면에서 우리나라 법률 수준이 후진적이라는 건가요?

"동양 문화권이 서류하고 친하지 않아요. 부모나 친구하고 돈 거래할 때 차용증을 안 써요. '정'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정이 깊을수록 복수심과 증오심도 강해져요. 그래서 재판도 합리적이 아니고 상대방을 아작내려고 합니다. 지금 맡고 있는 사건 중에 아내가 바람을 피워서 이혼 소송에 휘말린 게 있는데, 여자쪽 과실이니 위자료와 양육비를 줘야 되잖아요. 이 아줌마가 전업주부예요. 돈이 어딨어요. 그래서 감옥에 보낸다니까, 이 아줌마가 재혼한 남자에게 돈 물어내라고 계속 소송을 해서 재혼한 가정까지 파괴시켜요."

-가끔 변호사들이 사기를 당해서 뉴스가 되곤 합니다. 최근에도 변호사 2명이 9억원을 사기당한 사건도 있었고요. 그런 유혹 받아본 적 있으세요?

"그런 경우 많아요. 사건을 맡기기로 약정한 뒤에 수임료는 안 주면서 대신 좋은 사업이 있는데 투자하면 배당을 주겠다고 유혹하죠. 거기에 넘어가는 변호사들도 자격이 없어요. 욕심이 많아서 그래요."

-만약 삼성특검처럼 특검에서 참여 요청이 온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한번 해볼 수는 있어요. 사실 변호사 대부분 특검에는 안 가려고 합니다. 몇개월 동안 수입이 거의 없으니까. 또 욕 얻어먹기 딱 좋잖아요. 그래도 특검으로 오는 사건은 사회적 이슈니까 한번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행복할 수 없다면 절대 이혼하지마라

-'행복할 수 없다면 절대 이혼하지 마라'는 책도 내고, 강연도 많이 하시던데요. 부부생활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직업상 가정문제에 관한 상담이 많아요. 그래서 부부간 갈등이나 세대간 갈등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많았어요. 특히 결혼이라는 문제는 중요합니다. 결혼에는 부부간의 문제와 세대간의 문제를 모두 담고 있거든요. 이혼보다 못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도 가끔 있는데 차라리 준비가 됐다면 이혼을 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결혼 생활의 유지만이 행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저는 주로 이혼을 하지 말라고 만류하는 편입니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이혼을 해야합니까?

"어려운 문제인데요. 이혼을 한다고 해서 지금 결혼 생활보다 더 행복해진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이혼 후에 쏟을 노력을 현재 결혼 생활을 개선하는데 쓴다면 지금보다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인내심이 없는 사람은 많지만 결점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서로 맞춰 살아야죠. 이혼을 할때는 결혼할 때보다 10배는 더 생각해야 합니다."

◆정치? 등 떠밀면 할지도

-정치권에서 콜을 받은 적 있으세요? 한나라당 법률지원단위원, 정책자문위원, 서울특별시 선거관리위원, 대한변호사협회 북한이탈주민법률지원단 위원 등을 지내셨는데?

"없어요. 영입 제의 들어온 적은 한번도 없어요."

-해볼 생각은 있으신가요?

"들어오면 그 때 생각해 봐야죠. 공천받으러 뛰어다닐 생각은 없어요. 제가 선거운동을 17대, 18대 총선때 두번 해봤어요. 17대 총선에서는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에는 도저히 못하겠다 싶더라고요. 지역구 국회의원을 하려면 원치 않아도 여기저기 불려 다녀야 되고, 나는 못 하겠더라고요."

-20년 후 김병준은 어떤 모습일까요?

"저는 일단 당장 사회 헌신이나 봉사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아직 제 앞가림도 못한다고 생각하고. 다만 60세가 되면 고향에서 군수를 하고 싶어요. 우리가 꿈꾸는 이상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죠. 또 빈민은행처럼 가난한 이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 일도 하고 싶고요."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사진·프리랜서 장기훈 zkhaniel@hotmail.com

▨ 김병준 변호사는?=1962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났다. 협성중, 청구고와 계명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군복무를 마치고 한국통신에 근무하기도 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나이 서른에 고시생 딱지를 달았고, 6년 만에 꿈을 이뤘다. 고시생 시절 성균관대 법대에 편입했다. 2000년 변호사를 개업한 뒤 SBS '솔로몬의 선택'에 출연, 인간적인 해결책이나 독특한 견해를 선보이며 인기를 모았다. 요즘도 TV를 켜면 각종 예능프로그램과 교양프로그램에서 어렵잖게 그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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