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 예술 한번 할까요?"
1980년대 드라마 '왕룽일가'에서 곱슬머리 쿠웨이트 박이 은실네에게 했던 이 짧은 유행어는 한 시대를 풍미하고도 아직 회자되고 있다. 과연 춤은 예술인가? 연애도 내가 하면 사랑이요 남이 하면 스캔들인 것처럼 춤도 내가 추면 예술이요 남이 추면 외설인 걸까?
어릴 때 독수리표 전축에 뽕짝 음악을 틀어놓고 부모님이 쿵짝 쿵짝 스텝을 밟으시던 모습을 본적 있다. 낮잠을 자다 중간에 깬 상태였는데 혹여 분위기를 깰까봐 끝까지 자는 척하며 훔쳐봤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춤은 춤인데 '엉거주춤' 그 자체였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그 풍경이 흑백사진처럼 아련하고 그립기만 하다. 그 추억의 힘이 나를 그쪽으로 밀고 갔을까? 재작년 노인복지대학에서 잠시나마 댄스를 가르칠 기회가 있었다.
노인대학 평생교육원 대강당에는/ 오늘도 칠순의 할머니 지루박 추신다/ 이가 없으면 대신 잇몸이라/ 빠르고 숨찬 지루박곡 대신/국민카수 현철의 트롯 곡에 맞춰/ 쿵짝꿍짝 육 박자 밟으신다/한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저 꽃잎,/ 꽃잎보다 고왔을// 그러나 다 늦은 봄날/가배얍은 바람의 리드에도/금세 흐드러지고 마는 모란처럼/위태위태 중심 잃으신다/몸 따로 마음 따로 자꾸 박자 놓치신다/그때마다 까르르르…/뽀오얀 분 냄새 속에서/더 자꾸 자꾸는 세월 잊으신다/ 연세마저 까먹으신다//… 이하생략… 中.
그때, 칠순이 넘으신 어르신 한분은 지팡이에 의지해 다니셨지만 수업이 끝나면 으레 내게 다가오셔서 한춤 신청하셨다. 거동조차 불편하시던 분이 음악 앞에선 지팡이 없이도 물찬 제비처럼 멋들어지게 리드하시곤 했다. 월남하기 전 이북에서 과수원 창고에 숨어서 배우셨다는 할아버지도 계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분들을 가르쳐드린 게 아니라 그 분들이 도리어 나의 춤 스승님이셨다. 내가 어디서 그토록 뜨거운 열정까지 전수받을 수 있었을까?
사실, 우리 민족이 가무음곡을 즐기는 낭만적이고 낙천적인 품성이란 건 너나없이 수긍하지만 정작 댄스인은 밥을 굶고 살았던 곳이 이 땅이었다. 춤출 장소는 허락해 놓고 그 춤을 배울 장소는 원천봉쇄했던 '이상한 나라의' 법제 치하이기도 했다. 그랬으므로 춤꾼은 미풍양속을 해치는 풍기사범으로 간주되어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았던 것이다.
쿠웨이트 박, 그도 처음엔 열사의 나라에서 누구보다 피땀 흘려 일하던 선량한 소시민이었다. 그러나 급변하는 한 시대의 격랑에 휘말려 변두리 카바레를 전전하며 3류 제비족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어쩌면 그는 우리 모두가 위태위태하게 지나온 한 시대의 그늘진 초상이었으므로 우리는 그가 미우면서도 결코 미워할 수 없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이제 춤은 서서히 음지에서 양지로 인식이 전환되고 있다. 어둡고 음습한 곳에서 독버섯처럼 서식하는 것이 아니라 장미꽃 피고 능소화가 피는 환한 시간대에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배우고 즐길 수 있는 환경으로 무르익어가고 있다. 친구끼리라도 좋고 부부가 함께라면 더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누가 음흉하고 의뭉스런 남자를 늑대라 빗대었는가?
늑대만큼 가족애 깊고 책임감 강한 동물도 없다 했다. 일생 가족을 위해 기꺼이 봉사하고 중년과 노년에 멋진 춤사위를 펼치는 그대, 아름다운 반백의 늑대와 나는 내 생애 가장 황홀한 마지막 춤을 추고 싶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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